원시림에 둘러싸인 호반 길
(청주=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의 청남대는 국내 유일의 대통령 전용 별장이었다.
깊은 산속, 바다처럼 넓은 호수 옆 숲길은 온전한 휴식을 제공한다.
이곳이 대통령 휴식처로 선택된 이유도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았다.
청남대 전경. 대통령기념관과 봉황탑이 보인다.[사진/정동헌 기자]
'내륙 속 바다' 대청호 옆 숲길
청남대에는 운치 있는 산책로가 여럿 있다.
진입로는 흔치 않은 백합나무 가로수 길이었다. 한국이 광복 후 심었던 가로수는 은행나무, 포플러, 벚나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이팝나무 등이 대종이었다.
백합나무는 튤립꽃 모양의 예쁜 꽃이 피어서 튤립나무라고도 불린다.
생육 조건이 불리한 도심 환경에서 잘 자라고 수형이 아름다워 비교적 근래 주목받는 가로수 종이다.
이곳 백합나무는 1980년대 초 청남대가 지어질 때 심겼으니 수령이 40년 이상이다.
백합나무는 대청호 수변을 따라 청남대를 향해 몇 ㎞를 쭉 뻗어 있었다.
가로수와 호수 사이에 데크 길이 나 있다. 하염없이 걸어도 좋을 듯싶었다.
청남대 입구 백합나무 가로수 길[사진/정동헌 기자]
대청호는 소양강댐, 충주댐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다목적 댐인 대청댐 건설로 생긴 인공 호수이다.
대청댐은 1980년 12월, 5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대전, 충남, 천안, 아산, 부여, 공주, 충북, 청주, 전북 지역 생활용수 공급원으로, '내륙 속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크다.
청남대 숲길 정자나,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수면 위로 드러난 산봉우리들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처럼 보여 다도해를 연상시킨다.
청남대에는 대청호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숲길이 8∼9개 코스에 이른다. 숲길의 길이는 모두 합해 약 14㎞.
오각정 길, 솔바람 길, 민주화 길, 통일의 길, 화합의 길, 나라사랑 길, 호반 길, 등산로, 봉황탑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경비 부대 발칸 1진지를 전망대로 조성한 봉황탑은 '봉황의 숲' 속에 있다.
높이 22m의 나선형 탑으로, 약 200m를 올라가야 한다. 꼭대기에 이르면 청남대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희망솟대와 봉황탑[사진/정동헌 기자]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숲길은 대통령 별장 본관을 끼고 있는 '오각정 길'이다.
정문에서 청남대 기념관, 돌탑, 메타포레, 양어장을 지나면 시작되는 무장애 나눔 길이 오각정 길이다.
돌탑은 2003년 4월 18일 단행된 청남대 개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청남대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있는 32개 마을 주민 수와 같은 5천800개의 돌로 쌓아졌다.
모서리 수가 홀수인 오각정은 팔각정, 육각정보다 건축이 까다로워 흔하지 않다.
오각정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민주화의 길'에 있는 초가정, 그늘집 풍광과 함께 청남대 3경으로 꼽힐 만큼 서정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있는 호수광장 앞을 지나 그늘집, 초가정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길'도 관람객이 선호하는 길이다.
평지여서 걷기 쉬운 데다 대청호의 장관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새벽 조깅 하던 길[사진/정동헌 기자]
조깅을 즐겼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새벽에 이 길에서 수행원들과 함께하는 조깅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임시정부 기념관은 2022년 4월11일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에 개관했다.
임시정부 행정수반 8명을 이해하고 임시정부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초가정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청남대 인근 문의면에서 수집한 전통 생활 도구 7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이곳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고향의 바닷가 느낌이 든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故) 이희호 여사와 초가정에 앉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청남대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통일의 길'은 청남대 뒷산 능선을 따라 난 2.5㎞가량의 산길이다.
능선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탐방객이 산에 올라 대청호 경관을 감상하기 쉽게 전망대까지 가는 모노레일을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숲[사진/정동헌 기자]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
정문에서 오각정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메타포레'는 인기 사진 촬영지이다.
수령 30여 년의 메타세쿼이아 100여 그루가 병정처럼 대오를 맞춰 서 있다.
이 숲은 멋진 경관을 연출할 뿐 아니라 바로 옆의 양어장을 정수하는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메타세쿼이아는 습지에서 잘 자랄 뿐 아니라 수질을 정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관상수이지만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멸종 식물로 알려졌었다.
전쟁 중 중국 양쯔강 상류에서 생육하는 것이 발견돼, 이후 세계적으로 보급됐다.
메타세쿼이아는 약 70m까지 자랄 수 있는데 메타포레의 나무들은 수고가 50m 정도 돼 보였다.
청남대에는 메타포레만큼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큰 키의 나무가 또 있다.
'민주화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낙우송 가로수이다.
낙우송의 공기뿌리들[사진/정동헌 기자]
메타세쿼이아와 비슷하게 생긴 침엽수이지만 공기뿌리(기근)라는 특수 뿌리를 가졌다.
물가에서 자라는 낙우송은 물에 젖은 흙 속에서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 뿌리를 공기 중으로 내놓는데, 그것이 공기뿌리이다.
수변에 심긴 수령 50년가량의 낙우송 50여 그루 밑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기뿌리가 지표 위로 돌출해 있었다.
뭇 생명의 생존 방식과 전략이 사람의 상상 이상으로 다양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대통령별장 본관 접견실[사진/정동헌 기자]
문민정부의 청남대 구상…금융실명제
1983년부터 2003년까지 20년 동안 대통령 공식 별장이자, 제2 집무실이었던 이곳에서 하룻밤 이상 지낸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5명이다.
이들은 모두 이곳을 88회 방문해 366일 숙박하고, 471일을 지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약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남대 개방 행사 전날,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하룻밤을 묵었다.
그 이전 대통령들은 각각 15∼28회 청남대를 방문했다.
청남대 개방 후에 집권한 이명박 전 대통령,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곳을 1번씩 방문했으며, 숙박하지는 않았다.
청남대를 가장 많이 찾은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28차례 방문했다.
지하경제, 정경유착을 억제해 한국 사회 투명화의 전환점을 마련했던 금융실명제는 문민정부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구상했던 곳이 청남대로 알려져 있다.
초가정 앞 물멍 쉼터[사진/정동헌 기자]
국민 품속의 청남대
대통령별장 본관, 청남대 기념관, 대통령 기념관 등에는 이곳을 다녀간 대통령들이 썼던 가구와 집기, 휴가 중인 대통령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 면적 2천699㎡(약 800평)인 본관에는 침실, 회의실, 접견실, 서재, 식당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과거 대통령들의 자취와 역사를 느끼게 한다.
대통령 기념관은 서울 청와대 본관 건물을 60% 축소한 모양이다.
지하층에는 대통령 24시, 대국민 연설, 의장대 사열, 정상회담, 국무회의장 등의 이름이 붙여진 대통령 체험장이 있다.
대청호와 대통령기념관[사진/정동헌 기자]
1층에는 역대 대통령 기록화 10점이 전시돼 있다.
청남대 관람객은 꽤 많다.
개방 이후 지난해 4월 30일 현재 1천515만여 명이 다녀갔다. 1일 2천240여 명 꼴이다.
청남대를 처음 찾은 관람객들이 빠지지 않고 둘러보는 곳은 대통령별장 본관이다.
그러나 2번 이상 방문한 탐방객들은 주로 숲길 걷기를 즐긴다.
청남대를 둘러싼 숲은 원시림이다. 탐방로 주변만 관람객을 위해 조경하거나 정비하고, 나머지 숲은 손대지 않아 자연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청남대는 천혜의 호수정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