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계 가장 논쟁적 작가…국립현대미술관서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팔렸다던 다이아몬드 해골, 지분 절반이상 보유…"일부 매각돼 발표한 것"
작업실 재현해 미공개 작품 공개…"100년 후 기억이라도 되는 작가이길"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포즈 취하는 데이미언 허스트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개인전에 전시된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3.18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푸른 수조 속 상어 사체, 피가 흐르는 잘린 소머리, 수천 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나비 날개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죽음을 다루는 작품을 만드는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61)에게는 '미스터 데스'(Mr. Death)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허스트는 지난 1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내 예술은 삶에 관한 것이며 죽음이라는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간의 해석을 뒤집었다.
허스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달 20일 개막한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2주 전 방한했다. 그는 개막에 앞서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작품 자체에 메시지가 담겨 있으니 질의응답은 하지 않겠다"는 말만 남기고 퇴장했지만 연합뉴스와 만나 1시간 이상 예술과 삶의 철학, 자신에 대한 오해 등을 설명했다.
허스트는 "많은 이가 저에게 '죽음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한 중국 작가는 '우울증에 걸렸느냐'고 묻기도 했다"며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 삶에 관한 것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서 개인전 여는 데이미언 허스트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전시는 오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열린다. 2026.3.18 scape@yna.co.kr
이번 전시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천년' 등 국내 교과서에도 실린 대표작을 비롯해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50여 점을 통해 40여년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허스트는 한국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 이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미술관 관람객이 줄고 있는데 한국은 꾸준히 늘고 있고, 특히 젊은 관람객들이 중심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며 "무엇보다 한국 관람객들이 특별히 제 작품을 좋아해 줘서 한국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허스트의 기존 전시와 다른 점은 영국 런던에 있는 그의 작업실 '리버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작업실과 함께 그가 작업하던 미완성 회화 작품들도 공개됐다.
허스트는 미완성 회화 연작 '리버 페인팅'에 대해 "3년째 작업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완성이고 완성에 근접하지도 않았다"며 "매일 작업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덧칠하면서 언젠가는 위대한 작품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완성 작품을 공개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 관람객에게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기초에서 시작하고, 중간에 실수하네. 이런 사람도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하는 긍정적인 가능성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미완성 회화 작품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 재현된 데이미언 허스트 스튜디오에 놓인 미완성 회화 작품. 2026.3.21. laecorp@yna.co.kr
허스트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답변했다.
이번 전시에도 나온, 백금으로 주조하고 8천601개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2007년 5천만 파운드(약 994억원)에 판매됐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허스트가 여전히 소장 중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작품 가격을 올리기 위한 '거짓 마케팅 논란'이 일었다.
허스트는 "처음에는 한 수집가가 이 작품을 사기로 했다가 마지막에 구매하지 않았고, 이후 한 컨소시엄에서 지분의 3분의 1만 사겠다고 의사를 밝혔다"며 "재료비는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이어서 지분을 판매했다. 또 10%는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나머지 지분은 제가 갖고 있다. 어쨌든 판매가 됐기 때문에 갤러리에서는 팔렸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카소가 100달러어치 재료를 사서 그림을 그리고 이걸 100만달러에 판다고 하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가치가 있는 재료로 작업을 하면 재료비와 작품 가격을 비교하면서 논란이라고 말한다"며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와 데이미언 허스트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개인전에 전시된 '신의 사랑을 위하여'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3.18 scape@yna.co.kr
그의 개인전 계획이 알려지자 국립미술관에 어울리는 전시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립예술기관에서 나랏돈을 들여 상업적으로 성공한 해외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야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허스트는 당신의 작품이 한국 관람객에게 어떤 공익적 가치를 주느냐는 물음에 "작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데도, 필요했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며 "그게 예술의 위대함이며 저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상어 작품 앞 데이미언 허스트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개인전에 전시된 대표작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앞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3.18 scape@yna.co.kr
1965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허스트는 반항심 가득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림을 유일한 탈출구로 삼았다. 그는 런던으로 이사해 미술을 공부했고, 1988년 골드스미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23살에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를 통해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 함께한 작가들은 영국 현대미술의 세대교체를 주도한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렸고, 프리즈 전시는 영국 미술의 지형을 바꾼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그는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현대 미술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1995년엔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는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설치 작품들을 통해 생과 사를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벚꽃 같은 아름다운 대상을 그려 삶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허스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매일 바뀐다"며 "다만 갈수록 두려움은 덜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죽음을 맞이한 후 100년 뒤에는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물음에는 "우선은 기억이라도 되는 작가이고 싶다"며 "'데이미언 허스트는 오래 기억되는 작가'라고 결정할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웃음 지었다.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사인 포스터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데이미언 허스트가 기자에게 선물한 사인이 담긴 포스터. 허스트의 스튜디오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동의하면서도 사진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다. 2026.3.21.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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