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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3월 7일] 너는 어떻게 읽느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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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455장(통50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말씀 :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종종 하던 게임입니다. 먼저 다 같이 큰 원을 그려 자리에 앉습니다. 술래가 그중 한 명에게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질문받은 사람이 “네”라고 답하면, 질문받은 이의 양쪽 옆 사람은 재빨리 자리를 바꿔야 하고(그때 술래는 빈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아니요”라고 답하면 술래는 다시 “그럼 어떤 이웃을 사랑하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럼 질문받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안경 쓴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요. 그럼 안경 쓴 모든 사람은 전부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그때 앉지 못하고 남은 사람이 다시 술래가 됩니다. 주로 자리를 섞기 위해 하는 게임입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율법교사는 묻습니다. 단답형 질문에 예수님은 이야기로 답합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사마리아인 이야기죠.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야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되묻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라고요.

예수님의 이 질문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익숙한 교훈 이전에 더 근원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 보겠습니다. 율법교사가 ‘나’를 상수로 둔 채 질문한다면 예수님은 ‘나’를 변수로 바꾸어 답하신다고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을 예수님은 뒤바꿉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라는 되물음에는 ‘나’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질문엔 강도 만난 자와 이웃이 될 가능성을 지닌 누군가(who)가 있을 뿐이죠. 강도 만난 자가 상수고 이웃이 될 가능성을 지닌 누구가 변수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변수 자리에 데려다 놓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나’를 제자리에 가만두지 않을뿐더러 또 강도 만난 사람을 그저 도움받아야 할 대상으로 두지 않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내가 율법을 잘 지키는 수단으로 소비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고를 수 없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악한지 착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자의 위치에 놓여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고정된 상수는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 이웃의 자리에 데려다 놓습니다. 강도 만난 자와 혐오 받던 사마리아를 우선한 후 ‘나’를 변하는 자리에 놓습니다. 이제 ‘나’가 있던 자리에는 이웃이 될 가능성을 지닌 어떤 존재가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웃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지나쳐버린 사람들처럼요. 누군가가 내 이웃이 되기에 적절한지, 부적합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웃을 고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질문 이후에 ‘나’는 이웃이 될 가능성을 지닌 유동적인 존재일 뿐이니까요.

아이러니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나’가 들어갈 자리를 빼버린 것이니까요. 그분의 대답에 ‘나’는 설 곳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웃이 될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를 누군가의 곁이 될 가능성을 지닌 이웃으로의 초청입니다.

기도 : 주님, 우리 가정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마음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만희 목사(함께걷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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