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깨우는 바지락
사진=최현규 기자
봄이 오면 유독 입맛을 다시게 하는 재료가 있다. 맑고 시원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가진 바지락이다. 비싸거나 화려한 재료는 아니지만, 칼국수·된장국·순두부·술찜 같은 메뉴에서 어김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시장에서 바지락이 유난히 많이 보일 때면 ‘아,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봄철은 바지락 살이 차고 풍미가 좋아지는 시기다. 겨우내 펄 속에서 움츠렸던 바지락은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먹이를 충분히 먹어 살이 꽉 차오른다. 3월부터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해 4월이면 맛이 절정을 이룬다.
이때 잡은 바지락으로 요리를 하면 한층 더 맛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봄철이면 자연스럽게 바지락 칼국숫집을 찾게 되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바쁘게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이 바지락은 양념이 많이 들어간 요리보다 담백한 조리법에서 진가를 발휘하는데, 바지락 칼국수나 바지락 된장국 같은 슴슴한 메뉴가 오랜 기간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바지락이 가진 아미노산 성분이 국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그 어떤 양념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깊은 감칠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바지락 하나만으로도 맛이 완성된다. 바다의 MSG 그 자체다.
얼마 전 마포의 한 칼국숫집을 찾았다. 영업시간은 딱 점심 세 시간 남짓. 바지락 살을 발라내 끓인 생바지락 칼국수 전문점이다. 으레 바지락 칼국숫집에 가면 한참 동안 껍질을 까느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손님배려형’ 식당으로, 짧은 점심시간에 바지락 껍데기 까는 수고를 덜고 최대한 바지락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정성껏 바지락 살을 발라내 아주 맑게 끓여내어 주신다.
한 그릇 안에 바지락의 정점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쫄깃한 살, 씹을수록 진하게 배어 나오는 감칠맛, 바지락의 엑기스가 녹아든 국물. 여기에 고추와 마늘 절임으로 만든 이 집의 특제 다대기를 살짝 얹어 먹으면 젓가락이 쉴 틈이 없다. 점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어떻게 배를 채우나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구수한 기장밥이 무한으로 제공되니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 마포 칼국수(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63-8 지1층)
이렇게 맛있는 바지락을 집에서는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많은 사람이 해감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바지락 구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 유통되는 해수 보관 바지락은 이미 70% 이상 해감이 돼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깨끗이 씻은 뒤 3% 농도의 옅은 소금물에 2~3시간만 두면 남은 펄을 대부분 토해낸다. 이때 깊은 볼보다 트레이에 바지락을 넓게 펼쳐 해감하기를 추천한다. 위에서 토해낸 벌을 아래 바지락이 다시 먹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신선한 바지락은 사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대로 쪄도 아주 맛있다. 술이나 파·마늘 같은 향신채가 없어도 된다. 물 없이 냄비에 넣고 5~7분만 쪄내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바지락을 맛볼 수 있다. 마지막에 올리브오일 한두 바퀴를 두르면 그 맛이 더욱 극대화되는데 여기서 파생된 레시피가 바지락 솥밥이다.
바지락만 넣고 밥을 지어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올리브나 케이퍼 같은 짭짤한 절임류를 더하면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 이런 재료가 없다면 바지락만 넣고 밥을 한 뒤 마지막에 쪽파나 대파를 송송 썰어 올리면 완성이다. 이 레시피의 포인트는 신선한 올리브오일! 산뜻한 올리브오일로 마무리를 한 솥밥을 꼭 맛보길 바란다(레시피 참조).
바지락은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바다의 식재료였다. 서해나 남해에서는 갯벌에 나가면 손에 잡히는 것 대부분이 바지락이었기에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도 했다. 그 추억의 맛이 더해져 이제는 전 국민의 바지락이 되었다. 봄동이 물러가고 나니, 이제 바지락이 올 때가 되었나 보다.
장은실 맛있는 책방 편집장
장은실 편집장
은 요리책 전문 출판사 ‘맛있는 책방’을 운영하며 15년 넘게 푸드 관련 콘텐츠 기획을 해 왔습니다. 13일부터 ‘오늘 뭐 먹지’ 코너를 통해 제철 재료를 이용해 쉽게 만들어 즐길 수 있는 ‘패스트 건강식’과 숨은 맛집 등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