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 명분 쌓기 의혹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펜타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란을 향한 군사행동 관련 질의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극단적이고 근본적인 기독교 종말론이 미군 내 전쟁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최근 외신 보도로 불거졌다. 국내 종말론 전문가들은 이른바 ‘아마겟돈 전쟁’이 등장하는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6장의 본뜻과 거리가 먼 해석으로 보고 주의를 당부했다. 아마겟돈은 악의 세력이 결집해 전투를 벌일 인류 최후의 대격전장으로 언급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미국 군종교자유재단(MRFF)의 익명 제보를 인용해 “일부 미군 지휘관이 이란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경의 종말론에 관한 극단적 수사를 활용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지휘관은 “전쟁은 하나님 계획 중 일부”며 “예수의 재림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서 ‘아마겟돈’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들 매체는 이러한 발언이 정교분리 원칙을 위배하고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역시 이번 전쟁을 성전으로 바라본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의 지지로 정권을 잡았다. 고교 졸업 후 이슬람 율법 공부에도 몰두했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어 전쟁 명목을 성전으로 내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 이란인이 11일 테헤란에서 열린 전쟁 희생자의 대규모 장례식에서 새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포스터를 들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종교와 전쟁이 맞물리는 성전 개념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에선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 때부터 일부 기독교계에서 “이번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이며 곧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 남침례신학교 학장인 러셀 무어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 편집장은 11일 CT 칼럼에서 “중동에서 전쟁이 나거나 전쟁 소문이 돌 때마다 미국인은 성경 예언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며 “적잖은 이들이 성경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성경 예언을 해석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이단·사이비 종말론에 휘말릴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장로회신학대 신약학 객원교수인 양형주 대전도안교회 목사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경은 아마겟돈 전쟁을 나라 간 전쟁이 아닌 만국이 교회를 핍박하는 상황으로 기록한다”며 “지금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이란 건 일종의 음모론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음모론을 거론하며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의적 종말론 해석을 피하기 위해선 “성경 본문 속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신약성경의 종말론’(한국성서학연구소)을 공저한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는 “죽임당한 어린양으로 계시록에 묘사된 예수님은 가장 약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분이다. 상대를 힘으로 눌러 제압하는 분이 아니다”며 “이를 유념해 계시록을 읽으면 잘못된 해석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