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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3월 29일]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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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84장(통43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15장 1~12절

말씀 : 아브람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는 야훼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목사도 신앙 동료도 없이 혼자 알아가야 했습니다. 훗날 이집트 신들을 박살 내고 홍해를 가른 하나님을 아브람은 모릅니다. 그런 전능함과 막강함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신이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주겠다고 했는데 생길 조짐이 없습니다. 약속은 있는데 실체가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압니다. 약속에 걸어놓은 삶의 덩어리가 클수록,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오는 상실감, 배신감, 무력감 등이 얼마나 큰지를요. 그런데 하나님은 또 약속합니다.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 약속입니다.

그런 아브람이 안됐던지 하나님은 그를 바깥으로 불러냅니다. 그리고 하늘을 수놓은 셀 수 없는 별을 보여줍니다. 멋진 광경이죠. 하지만 저라면 맥 빠질 것 같습니다. 아브람에게 필요한 건 약속이 아니라 실체니까요. 그런데 또 약속이라니요. 여기서 놀라운 건 아브람의 반응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8절)

이 비약적인 반응은 뭘까요. 무엇이 그의 태도를 바꾸었을까요. 한 구절이 눈에 띕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12절)

하늘에서 떨어진 믿음이라도 받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순백색 믿음을 지닌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는 표현은 아브람의 믿음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가 걷고 있는 걸음이 얼마나 살 떨리고 불안한 여정이었는지를, 얼마나 위태로운 삶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은 아브람처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브람은 이렇게 말할 것만 같습니다. ‘당신들은 내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고요. ‘잠들 때조차 나를 짓눌렀던 깊은 어둠과 두려움을 모른다면 내 믿음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할 것 같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내 믿음을 빼앗아 가지 말라고, 그는 말할 것 같습니다.

성경이 칭찬하듯 그는 분명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때 묻지 않은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깊은 어둠과 공포로 뒤범벅된 살 떨리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믿음은 가짜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는 믿었기 때문에 깊은 어둠과 공포에 짓눌렸습니다. 깊은 어둠과 공포에 짓눌린 중에 그는 믿었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있던 곳을 나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새로운 일이 시작될 새로운 땅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람의 대를 잇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시작된 길이 계속될 것인지의 문제죠. 자손 문제는 곧 누군가가 그 길을 계속 걸어갈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불임입니다. 약속은 도무지 성취될 것 같지 않고 이제 막 시작한 길이 금방이라도 벼랑일 것 같습니다. 그러는 중에 아브람은 믿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어둠인 게 당연합니다. 오히려 믿기 때문에 짓눌리는 어둠이고 두려움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는 믿음입니다.

기도 : 어둠 중에서도 믿게 하소서. 손을 더듬거리며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만희 목사(함께걷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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