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도시 4인방 한국교회를 말하다
복음과도시 소속 4명의 목사들이 1일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훈 길성운 이인호 정명호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한국교회의 외형적 성장주의와 목회자들의 자기합리화를 비판하며 본질적 갱신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 복음주의권 목회자 4인이 모였다. 길성운(성복중앙교회) 이인호(더사랑의교회) 이재훈(온누리교회) 정명호(혜성교회) 목사는 1일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에서 좌담회를 열고 한국교회의 내면적 위기를 진단했다.
이들이 이날 주목한 것은 한국교회의 위기가 단순한 침체나 외형 축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는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사역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꺼내 든 본문이 말라기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예배와 제사장, 가정과 언약, 정의와 공동체 질서를 다룬다. 겉으로는 종교적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을 잃어버린 공동체를 겨눈다.
정명호 목사는 말라기의 특징으로 “너희는 이르기를”이라는 반복 구문을 들었다. 다른 구약 선지서가 선지자의 일방적 책망과 회개 촉구에 가깝다면 말라기는 회중의 항변을 먼저 드러낸다는 것이다. 정 목사는 이를 두고 “오늘 한국교회의 자기합리화 구조와 닮았다”고 진단했다. 신뢰도 하락과 정치적 양극화 도덕 불감증이 심화하고 있는데도 교회 안에서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직면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느냐”는 식의 정당화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말라기는 실수가 아니라 확신 속에서 벌어지는 왜곡을 다룬다”며 “지금 한국교회가 가장 불편하게 들어야 할 본문”이라고 말했다.
정명호 혜성교회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정 목사가 이날 강조한 말라기의 키워드는 ‘제사장의 실패’다. 성경에서 제사장은 하나님 말씀을 맡아 공동체를 바른길로 이끄는 존재인데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목회자와 겹친다. 그는 “목회자들에게 가장 뼈아픈 것이 예배의 실패”라며 “목회자들도 목회를 권태롭게 여기고 짐처럼 감당하며 확신과 기쁨 없이 버티는 현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사장의 역할에서 실패하니 성도들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게 되고 신뢰가 무너지고 사람들의 죄악을 방기하고 방관하는 문제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말라기가 겨누는 것은 교회 바깥세상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맡은 사람들의 실패라는 얘기다.
이재훈 목사는 이 문제를 예배의 본질과 목회의 기준으로 끌어왔다. 그는 “복음의 기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이며 사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예 건축 등 외형에 에너지를 쏟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보이는 성전의 재건이 곧 예배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라기가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좋은 시설이 좋은 예배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우리 예배와 목회 안에 살아계신 예수의 임재가 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 목사는 목회자들이 서로 소명을 재확인하고 목회의 길을 복음적으로 재형성하는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단순한 친목이나 정치적 연대가 아니라 복음 앞에서 목회자의 삶과 목회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목회자들부터 본질 앞에 다시 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목사가 이사회 이사장으로 있는 TGC코리아는 ‘더 가스펠 코얼리션(The Gospel Coalition)’의 한국 네트워크로 복음 중심 신학과 목회 기준을 함께 점검하는 데 무게를 둔다.
길성운 목사는 위기의 뿌리를 목회자의 내면에서 찾았다. 그는 “종교는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열심이고, 복음은 이미 주님이 이루신 사랑을 기뻐하고 누리는 것”이라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깊은 감격 없이 목회에만 몰두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모습”이라고 경고했다. 복음의 감격이 사라진 자리를 성과와 수치, 비교가 대신하면 목회는 보여주기식으로 흐르고 결국 교만이나 탈진에 빠져 목회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길성운 성복중앙교회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미국의 팀 켈러(1950~2023) 목사가 설립한 CTC(City to City)의 한국 지부인 CTC코리아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길 목사는 교회의 미래를 위한 ‘개척 생태계’의 중요성으로 논의를 넓혔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새로운 회심보다 기존 신자들의 수평 이동에 의존하는 탓에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 확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그는 미국 CTC 조사를 인용해 “만 명 모이는 대형 교회 하나보다 100명 규모의 건강한 교회 100개가 있을 때 새신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한두 교회의 고군분투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으며, 복음적 교회들이 연대해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수세에 몰린 한국교회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인호 목사는 복음 갱신과 교회 개척, 연합을 한국교회가 함께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는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 종교화되고 게토화된다”며 “기존 교회는 끊임없이 갱신돼야 하고, 그 열매가 새로운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이들이 다시 연합해 큰 숲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개척은 별개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갱신의 자연스러운 열매라는 의미다.
이인호 더사랑의교회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 목사는 연합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 신학적 비전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태도는 좋지만 연합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것은 문제”라며 “같은 교단 안에서도 철학이 다르고 각자도생하는 현시점에서 세상을 복음적으로 바라보는 공동의 비전이 절실하다”고 했다. 특정 지도자를 맹종하던 시대가 끝난 만큼 이제는 여러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며 서로가 경쟁자가 아닌 식구임을 깨닫는 과정이 실제적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4명의 목회자는 신뢰도 하락, 지도자의 실패, 수평 이동, 개교회주의 등 한국교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는 개별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하나의 병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말라기가 고발한 이 병증이 오늘날 한국교회 내부의 무감각과 자기 정당화 속에서 더욱 깊어질 것을 우려했다.
복음과도시 소속 4명의 목사들이 1일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훈 길성운 이인호 정명호 목사.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복음과도시(이사장 이인호 목사)는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강원 원주 오크밸리에서 2026 복음과도시 목회자 콘퍼런스를 연다. ‘말라기로 본 오늘의 목회’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목회자와 신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복음과도시는 TGC코리아, CTC코리아, 공동체성경읽기, 714연합기도운동본부와 함께 이번 콘퍼런스를 준비하고 있다.
콘퍼런스를 기획한 정 목사는 “이번 콘퍼런스가 목회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들어야 할 질문을 마주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흔드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인호 목사는 “이번 콘퍼런스가 나이와 교회 규모를 떠나 복음 안에서 겸손히 만나 연대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