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마음으로 낳은 아이, 누군가는 가슴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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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책과 길]

너의 한국 엄마에게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푸른숲, 444쪽, 2만3000원

최근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와 아들 안데르스 현 몰비크 보튼마르크가 서울 종로구 한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푸른숲 제공

네 살 무렵 첫째 아이는 침대 옆에 아기 사진을 붙여 두고 비뚤배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어놨다. “나도 이런 걸 갖고 싶어.” 동생을 낳자고 결심했다. 쉽게 임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좌절했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상실감은 더욱 커졌고 결국에는 수치심이 되어 갔다. 그때 입양을 생각했다. 입양 단체에 등록했고 러시아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기다렸다. 기쁨과 설렘으로 아이 방을 꾸미고 준비를 마쳤지만 입양 절차가 중단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전화가 왔다. 한국 남자아이가 배정됐다는 소식이었다. 단체 관계자는 “이번에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선 입양 절차가 매우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고 안심시켰다. 실제로 그랬다. 1998년 겨울, 예상보다 빨리 아이는 왔다. 가슴에 ‘K98-135’라는 번호표를 달고. 노르웨이 사회학자인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는 그렇게 생후 8개월 된 한국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사랑으로만 정성껏 아이를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입양은 무엇보다도 선한 일이며 필요한 일이고,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그리고 부모에게는 아이를 안겨주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서서히 스스로 새로운 질문이 꿈틀댔다. “나의 바람, 아이를 갖고자 했던 그 간절한 마음 때문에 입양의 결과와 그 영향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나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어떻게 보호받는지 질문하지 않았을까. 왜 그 어머니들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까.”

책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담겼다. 혼란과 침묵이 덧대진 아들의 성장기를 곁에서 지켜본 어머니의 사적인 기록이자 조작과 오류로 얼룩진 입양 산업의 민낯을 파헤친 사회학자의 치밀한 탐사 보고서다. 이질적인 두 이야기가 교차하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해외 입양 산업이라는 거대한 실체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노르웨이 엄마는 아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아이의 한국 이름은 ‘박현욱’이었다. 한국은 아들의 일부였기에 한국 이름 가운데 ‘현’을 남겨 ‘안데르스 현 몰비크 보튼마르크’라는 노르웨이 이름을 지었다. 혹시나 자라서 외로울까 봐 한국에서 여동생도 입양했다. 미숙아로 태어나 몸 전체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는 ‘근육 긴장 항진’이라는 증세를 보이자 2년이나 물리치료사를 찾았고, 매일 집에서 운동을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던 아들의 울부짖음에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던 아들의 상처를 깨닫게 된다. 어린 나이에 양육자가 수없이 바뀌면서 애착 형성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를 그저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데려왔다고 여겼지만 동시에 너를 어떤 근원에서 떼어 내기도 했음을 깨달았다. 냄새, 소리, 언어 등, 우리는 너를 뿌리째 뽑아 옮겨 심었다. 우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처를 너에게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불안해졌다.”

아들은 커가면서 수많은 인종 차별을 겪었다. “빌어먹을 누런 놈”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들은 늘 “괜찮아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그것이 ‘내면화된 인종 차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소수자들이 주변의 인종 차별적인 태도나 고정 관념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내면화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들이 온갖 배제와 소외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해 홀로 묵묵히 버텨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엄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뒀던 국제 입양의 어두운 면을 추적해 간다. 오랫동안 국제 입양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됐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입양은 부모가 없는 아이에게 가정을 찾아주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모에게 자녀를 선물하는 ‘윈윈’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산업화된 아동 매매’에 가까웠다. 1970~80년대 한국은 입양 기관들의 신속한 행정 처리를 위해 호적을 손쉽게 조작했다. 살아있는 친부모가 있는 아이도 서류에는 ‘고아’로 둔갑했고, 심지어 입양이 확정된 아이가 사망하면 다른 아이가 죽은 아이의 신분을 물려받아 해외로 보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입양 단체들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엄마는 “서구의 아이 없는 부부들은 그렇게 해서 간절한 바람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비극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아이를 데려오는 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정작 그 아이의 친부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도록 돕는 데는 인색했는가.”

엄마는 “나 역시 이 일에 가담했었다”고 자책하지만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다. 책에는 역설적인 통계가 등장한다. 저자의 아들이 입양되던 1998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46명이었는데 10년 뒤 금융위기를 벗어날 즈음에는 1.19명으로 떨어졌다. 같은 10년 동안 아이가 줄고 있는데도 2만3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고아 호적’을 안고 서구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중 1000여명이 노르웨이로 향했다. 책은 그들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책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세· 줄· 평………………………………………★★★

·국제 입양의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다

·국제 입양 제로를 선언하기에 앞서 반성이 먼저다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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