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체험된 ‘K등산’ 르포
등산을 마친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난 12일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인근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2일 찾은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인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외국인 등산객들이었다. 점심 무렵부터 산행을 시작해 이제 막 내려왔다는 멕시코 고등학생, 친구와 함께 한국을 관광 중이라는 아일랜드 청년, 친구 6명과 함께 북한산을 찾은 20대 러시아 여성…. 이들은 저마다 한국의 등산 문화, 이른바 ‘K등산’의 재미를 만끽하는 분위기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왔다는 알리사 이바노바(21)씨는 “남들 다 하는 흔한 쇼핑이나 명동거리를 걷는 것보다 평생 기억에 남을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친구들과 북한산을 찾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북한산에서 마주친 등산객 중엔 외국인이 거의 3분의 1에 달했는데, 정상인 백운대에서 만난 중국인 자오쉬(24)씨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정상 표지석 앞에서 여자친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도 웅장하고 유명한 산이 많지만 북한산에는 꼭 오고 싶었다”며 “서울의 거대한 모습을 생생하게 내려다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산길에 만난 한국인 등산객 김진(46)씨는 “요즘 산에 오면 외국인이 정말 많다”며 “특히 젊은 사람만 놓고 보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에 오른 등산객들이 서울 도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실제로 K등산의 인기는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는 등산을 소재로 삼은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소셜미디어에는 ‘#서울하이킹(seoulhiking)’이나 ‘#코리아하이킹(koreahiking)’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연일 쏟아지고 있고, K등산을 다룬 해외 크리에이터 영상 중엔 조회수가 수십만회에 달하는 것이 적지 않다.
해외 언론에서도 K등산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예컨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한국의 도심 하이킹이 왜 이토록 인기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관광상품이 된 한국의 등산 문화를 조명했다. SCMP는 “그동안 한국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의 ‘할 일 목록(to-do lists)’ 최상단엔 길거리 음식을 먹거나 K팝 굿즈나 화장품을 쇼핑하는 것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산 정상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고 하산 후에는 막걸리로 땀을 식히는 것이 유행이 됐다”고 전했다.
이 같은 등산 열풍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등산은 더 이상 중장년층만 즐기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MZ세대에게도 등산은 힙(Hip)하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최근엔 주말마다 관악산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관악산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등산의 인기는 각종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7일 발표한 ‘2026 등산 경험 및 등산 문화 관련 인식 조사’가 대표적이다. 여기엔 19~6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는데, “최근 1년간 등산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66.9%에 달했다. 응답자의 58.8%는 최근 등산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을 체감했다고 답했고, 과거보다 산을 찾는 젊은층이 많아진 것 같다는 답변도 절반을 웃도는 51.2%나 됐다. 20, 30대 응답자 가운데 등산의 인기 이유로 소셜미디어 확산을 꼽은 비율은 각각 40.5%, 39.0%에 달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는 개성 넘치는 등산복을 입고 정상 표지석 앞에서 이른바 ‘오등완(오늘 등산 완료)’ 인증샷을 남기는 문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에게 등산은 단순한 체력 단련을 넘어 대자연 속에서 자기 관리를 실천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는 매력적인 여가활동으로 재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등산의 인기 덕분에 아웃도어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 2월 19일~3월 18일 등산화나 등산가방 등 등산 관련 상품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나 늘었다. 패션 플랫폼 W컨셉에서도 지난 1~3월 등산용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등산 열풍 이유로 한국 도시의 독특한 환경을 꼽기도 한다. 서울만 하더라도 세계 유명 수도보다 상대적으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누구나 등산로에 도착할 수 있다.
여가 및 여행 트렌드 변화도 K등산의 인기를 분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는 “과거엔 관광객들이 명동에서 쇼핑을 즐기거나 서울의 랜드마크를 방문하는 식의 ‘수동적인 여행’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한국인들의 일상을 직접 체험해 보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서울시민이 선호하는 여가활동 중 하나인 등산을 직접 해보며 한국인의 삶 속에 녹아들고자 하는 욕구가 최근의 K등산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등산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관광 당국의 적극적인 자세를 꼽기도 했다. 그는 “서울관광재단과 같은 실행 조직들이 북한산, 관악산 등에 관광센터를 선도적으로 구축해 홍보하고, 외국인들을 위해 등산화나 등산복 같은 장비 대여 서비스를 잘 갖춰놓은 것도 등산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차지했다”며 “단순한 대여에 그치지 않고 이를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홍보한 마케팅 전략 역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