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방송·문화]
최근 개봉 다큐 연출한 홍주현 감독
‘파란당’ 사람들 경북 선거 도전 기록
“험지에 거름 되겠다”는 간절함 담아
‘파란 나라를 보았니’ 만들지는 “반반”
베테랑 방송작가 출신인 홍주현 감독. 김지훈 기자
“교회에 정말 괜찮은 청년이 있는데, 이번에 민주당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왕따를 당하나 봐.” 2022년 경북 구미에 사는 친구에게서 온 전화가 영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경북도지사 후보로 나온 사람이 있는데 꼭 ‘여자 노무현’ 같다. 영상 한 번 찾아 봐.”
2022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대한민국의 지도는 온통 빨간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도지사 후보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 국민의힘 소속 현직 이철우 경북지사의 무투표 당선을 막기 위해 경북의 유일한 민주당 도의원이었던 임미애가 급히 선거에 뛰어들었다. 의성 농민으로 살아온 임 후보의 남편 김현권 역시 구미에서 20년 정치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선언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홍주현 감독은 당시 임미애의 영상을 보며 제20대 대선 직후의 우울함이 조금씩 가셨다고 했다. 험지에서 싸우는 사람치고는 너무 푸근했다. 꼿꼿하지만 부드러웠고, 쉬운 말인데 핵심이 쏙쏙 박혔다.
“거긴 답이 없어”, 오만하고 게으른 문장 앞에 홍 감독은 무작정 구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방선거를 불과 11일 앞둔 시점이었다. 기획안도 제작비도 없었다. 20년 넘게 ‘한국인의 밥상’ ‘VJ특공대’ ‘인간극장’ 등을 집필하며 단련된 작가로서의 감각만을 믿고 던진 도전은 임미애의 그것처럼 무모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리얼 험지선거 휴먼 다큐멘터리 ‘빨간 나라를 보았니’(
포스터
)는 2022년 지방선거부터 2024년 총선까지 경북에서 분투한 민주당 후보들의 2년을 기록했다. “왜 굳이, 미련하게 여기일까”라는 호기심도 담겼다.
“아쉬운 성적표만 보고 ‘너는 왜 아직도 꼴찌니?’라고 애를 닦달하는 엄마가 딱 저였더라고요. 이 아이가 밤을 새웠는지, 코피를 흘렸는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는 보지 않았던 거죠. ‘빨간 나라를 봤냐’는 제목은 ‘으이구 얼마나 한심한지 봤니’가 아니라 ‘정작 그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정말 들여다봤니’라는 의미에요.”
민주당 도지사 후보 임미애는 홍 감독을 처음 만난 날 이렇게 물었다. “뭐가 궁금해서 오셨어요?” 질문하러 간 사람이 오히려 질문을 받으니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명함을 내밀면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질색하며 손사래 치는 적대감을 왜 이제야 궁금해하느냐는 서운함과 소외감이 섞인 물음 같았단다.
홍 감독은 2024년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였던 임미애가 유세 중 폭행당해 끌려 내려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상대 당 선거운동원들과 충돌한 임 후보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요청이 묵살된 채 여러 남성에게 물리적으로 제압당하며 유세차 밖 인도 쪽으로 끌려 나갔다.
“저 사람을 구출해야 하나, 찍어야 하나…강한 폭력성에 노출되니 너무 무서워서 리액션조차 안 나오더라고요. 봉변을 당하고 홀로 걸어 나오던 뒷모습이 그렇게 외롭더니, 곧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비례 3번을 찍어 달라고 웃으며 또 명함을 돌려요. 도대체 저 멘탈은 뭐지?(웃음)”
역설적이게도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은 더불어민주연합 유튜브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돼 임 후보가 당시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 몫이 조금은 있다”며 웃음을 지은 홍 감독은 “그가 당선됐을 때 정말 뭉클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임미애뿐 아니라 경북 곳곳에서 출마한 인물들을 따라간다. 영주·봉화·영양의 박규환, 안동의 김상우, 칠곡의 정석원 등이다. 홍 감독은 카메라 감독을 포항으로 보낸 후 혼자 아이폰을 들고 칠곡의 정석원을 찾았다.
“내가 꽃은 못 되더라도 험지에 거름 되겠다”고 말하는 정 후보 뒤로 꽃들이 흐드러지게 펴 있었다. 그 괴리감에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는 말을 전하니 김현권 후보는 “누가 정말 거름이 되고 싶겠나. 다 꽃이 되고 싶지”라고 나직하게 대꾸했다고 한다.
영화 말미 카메라는 2024년 서울, 정장에 책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임미애를 조용히 따라간다. 더 이상 농사일 하던 차림도, 파란 조끼 입은 선거운동원의 모습도 아니다. “해피엔딩 같죠? 그치만 임 의원에게는 여의도가 목표가 아니에요. 여전히 경북을 어떻게 하느냐가 최종 목표죠.”
엔딩에서 슬쩍 내비친 차기작 ‘파란 나라를 보았니’를 정말 제작할 것이냐는 질문에 홍 감독은 “반반”이라며 웃었다. “사실 그 엔딩은 일종의 유머였다”면서도 “전라도에도 절박한 국민의힘 사람들이 있을 텐데 궁금하기도 하다”고 했다.
지는 싸움에 기꺼이 나선 사람들, 그 지독한 짝사랑을 담아낸 이 다큐멘터리는 21일 기준 네이버 평점 9.5점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