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일(맨 왼쪽)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양성자 치료 직전, 간암 환자에게 치료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서울병원
암환자에게 '꿈의 치료기'로 불리는 '양성자 빔'이 2007년 국내 첫 도입된 가운데, 기존의 암 치료법으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난치성 암환자에게 양성자 치료가 암 재발·악화를 막았다는 장기간의 추적 연구 결과가 잇따라 주목된다.
8일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방사선종양학과 박희철·유정일 교수, 이정하 전공의 연구팀은 양성자로 치료한 간암 사례 2000건을 분석해 유럽암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 대상은 간암 치료의 국제 가이드라인(BCLC, Barcelona Clinic Liver Cancer)에 따라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간암환자 1823명(중복 치료 환자 포함)이었다. 이들은 종양의 위치, 기저 간기능, 기저 질환, 고연령 등의 사유로 간암 치료의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른 표준 치료(수술, 고주파 소작술 등)를 받을 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치료 전 4차원 특수 CT(컴퓨터단층촬영)를 통해 암·장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치료 시에도 실시간 호흡 상태를 반영해 고정밀 양성자 치료를 시행했다. 2년 간의 양성자 치료 성적을 살펴봤더니 간암이 재발·진행하지 않은 환자 비율이 모든 병기에서 높게 유지됐다. 구체적으로는 초기에 해당하는 BCLC 0기에서 95.5%, A기가 93.9%였고, 중기에 해당하는 BCLC B기에서 98.5%, 그보다 더 진행한 환자(BCLC C기)에서도 87.6%로 높은 성적을 보였다.
삼성서울병원은 표준 치료가 불가능한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양성자 치료를 시행했더니 국소 종양 제어율이 진행성 병기(BCLC C기)에서도 83.3%에 달했다고 8일 밝혔다. /자료=삼성서울병원
양성자 치료의 핵심 원리인 브래그피크를 설명한 그래프. /자료=삼성서울병원
전체 생존율도 3년 기준 0기에서 81.1%, A기 65.5%, B기 45.5%, C기 37.2%로 기존 표준 치료에 못지 않은 양호한 성적을 냈다. 연구를 진행한 박 교수(양성자치료센터장)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 치료가 부적합했던 간암 환자에게 양성자 치료가 높은 국소 제어율과 생존율을 기대할 수 있는 확실한 치료 대안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자 치료란, 양성자빔의 '브래그피크(Bragg peak)'라는 물리적 특성을 이용한 차세대 방사선 치료법이다. 브래그 피크란 양성자의 고유한 특성으로, 양성자를 강하게 쏘는 빔(양성자 빔)이 사람 몸속 정상 조직을 투과해 암 조직에 도달하자마자 막대한 양의 방사선 에너지를 쏟아부어 암세포를 죽인다. 그 직후 방사선 에너지가 급격히 사라진다.
쉽게 말해 빔을 쏴 몸속에 들어온 양성자는 암세포만 타격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는 기존의 방사선 치료( X선 세기 조절 방식)와 달리, 정상 조직에 쬐는 방사선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정상 조직을 최대한 보호한다.
문성호(왼쪽)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이 피부암 일종인 맥락막흑색종 환자에게 양성자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사진=국립암센터
이런 장점 덕분에 양성자 치료는 식도 기능을 보존해야 할 식도암 환자에게도 동앗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현재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는 식도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양성자 치료 임상연구 결과를 진행하는데,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 문성호 양성자치료센터장은 "식도암 1기 환자에게 양성자 치료를 시행했더니 식도 근처 장기인 심장·폐까지 방사선이 노출되는 것을 줄여 폐 기능 저하, 심장 합병증 발생률을 유의하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또 중증 림프구 감소증이 발생할 위험도 줄여 식도암 환자의 생존율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포함, 전 세계가 수십 년간 효과·안전성을 계속 검증한 입자 방사선 치료는 현재까지 양성자 치료가 유일하다. 국내에서 양성자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암환자들의 경제적 부담까지 줄였다. 병원가에서도 양성자 치료 성적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늘고 있다. 2007년 양성자 치료기를 국내 첫 도입한 국립암센터는 내년 최신 기술이 적용된 국내 최고 수준의 '차세대 신형 양성자치료기'를 설치해 202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는 2015년말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하고, 2024년 9월 국내 최초로 간암 양성자 치료 2000례를 돌파한 바 있다. 지난해 기준, 양성자 치료를 받은 암환자 수가 8183명을 기록했다. 치료 건수만 보면 10만 건이 넘는다. 이 병원에서 지난해 9월까지 양성자 치료를 받은 환자(7908명) 가운데 간암이 2403명(30.4%)으로 가장 많았고, 두경부암 1466명(18.5%), 폐암 1304명(16.5%), 뇌종양 676명(8.5%), 췌담도암 377명(4.8%) 순으로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