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美 아카데미상 2관왕
장편 애니·주제가 상 수상
매기 강 "모든 한국인 위한 상"
헌트릭스 '골든' 울려퍼지자
시상식장 콘서트장으로 변신
'원 배틀…' 6관왕 최다 트로피
여우주연상 '햄넷' 제시 버클리
제98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의 무대를 펼치는 헌트릭스의 모습. 왼쪽부터 레이 아미, 이재, 오드리 누나. 오스카 시상식 참석자들은 K팝 응원봉을 들고 열광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2관왕에 오르며 K컬처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번 수상은 지난해 6월 공개 이후 이어진 '케데헌' 열풍의 화려한 피날레로도 읽힌다.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이어 오스카까지 석권했기 때문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원 배틀)'는 올해 오스카 6관왕에, 라이언 쿠글러의 '씨너스: 죄인들'은 오스카 4관왕에 올랐다. 또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클로이 자오의 '햄넷'에서 아그네스를 연기한 제시 버클리에게 주어졌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케데헌'은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경쟁작은 '주토피아2' '엘리오' '아르코' 등이었으나 '케데헌'의 적수가 되진 못했다.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든 '케데헌'의 매기 강 감독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런 영화를 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안타깝다. 다음 세대는 더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이 영화는 한국을 위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을 위한 상"이라고 말했다.
또 주제곡 '골든'을 작곡하고 부른 '헌트릭스'의 이재 역시 오스카 주제가상 트로피를 받아들고 한참을 울먹였다. 이재는 "어린 시절, 사람들은 내가 K팝을 좋아한다고 놀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한국어 가사를 부르고 있다. 이 상은 성공이 아니라 회복력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데헌'은 이로써 K컬처가 이제 세계의 진정한 중심 언어임을 입증해냈다. 특히 주제가상 발표 직전 오스카 시상식 무대에서 전 세계에 생중계된 '골든' 공연은 K컬처의 정점을 말해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판소리, 한복, 쪽머리, 장구, 갓 등 한국의 전통요소가 어우러진 가운데 '골든'의 첫 음이 시작되자 객석은 열광의 몸짓으로 뒤덮였고, 참석자들은 둥근 전구 모양의 응원봉 수백 개를 흔들며 응원했다.
특히 에마 스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스티븐 스필버그가 응원봉을 흔드는 장면에 중계 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한국식 팬덤 문화가 미국 영상산업의 정점인 오스카에서 재현돼 시상식장을 'K팝 콘서트장'으로 바꿔버린 이 풍경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었다.
'케데헌'의 이면에서 이번 오스카 시상식 최고의 관심은 '최고상'으로 평가되는 작품상 및 감독상의 향방이었다. '씨너스: 죄인들'이 16개 부문에, '원 배틀'이 13개 부문에 각각 노미네이트되면서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오스카는 '원 배틀'에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캐스팅상, 남우조연상(숀 펜)을 주면서 6관왕의 영예를 안겼다.
제98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으로 6관왕을 차지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원 배틀'을 연출한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이 영화의 주제와 오늘날 전쟁 등으로 파국에 직면한 세상을 병치시키며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둔 엉망진창인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상식과 품위를 다음 세대가 되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씨너스: 죄인들'은 남우주연상(마이클 B 조던), 각본상, 음악상, 촬영상 등 4관왕에 올랐다.
두 영화의 '격돌' 이면에서, 또 다른 관심은 여우주연상 트로피의 행방이었다. 클로이 자오의 '햄넷'에서 셰익스피어의 아내 아그네스로 열연한 제시 버클리가 트로피 주인공으로 호명됐다. 오스카 국제영화상은 요아킴 트리에르의 '센티멘탈 밸류'에 돌아갔다.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등 트로피 3개를 일찌감치 챙겼고 '아바타: 불과 재'는 시각효과상, 'F1 더 무비'는 음향상을 수상하는 선에 그쳤다.
이날 오스카 시상식에선 정치적 이슈가 전면화하진 않았으나 일부 시상자와 수상자들의 뼈 있는 발언까지 막진 못했다.
오래전부터 정치적 이슈에 대한 강한 규탄의 목소리를 내온 하비에르 바르뎀은 시상대에 서자마자 "전쟁에 반대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일성을 남겼다.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뜻하는 붉은 배지를 착용하기도 했다. '센티멘탈 밸류'의 요아킴 트리에르는 수상 소감의 말미에서 "아이들의 삶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말자"고 주장했다.
다만 오점도 없지 않았다. '골든'으로 주제가상을 수상한 이재가 짧은 소감을 마친 뒤 둥료 작곡가 유한에게 마이크를 넘기려 하자 주최 측이 시간상의 이유로 범퍼곡(코너 전환용 음악)을 틀어버리면서 소감이 끊기고 말았다. 문제적인 장면에 대해 외신들은 "무례하다" "최악의 장면"이라고 강한 논조로 비판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