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준 준AI컨설팅 대표
실패·실수 아닌 거짓 절대 못 참아
‘지적 정직함 중시’ 조직문화 강조
핵심기술 개발 원천 ‘톱5싱스’ 소개
주 52시간제엔 “한국 R&D 족쇄”
제조업 특화 LLM 집중 전략 제안
유응준 준AI컨설팅 대표가 6일 서울 성동구 모티브출판사에서 신간 ‘엔비디아 DNA’를 소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화를 잘 내고 욕도 자주 하는 무서운 CEO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분노하는 지점이 ‘실패’가 아니라 ‘변명’과 ‘거짓’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황 CEO의 고집과 원칙 덕분에 엔비디아는 방향을 잃지 않았습니다.”
유응준 준AI컨설팅 대표는 6일 서울 성동구 모티브출판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황 CEO의 리더십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016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엔비디아코리아 대표를 지낸 유 대표는 매 분기마다 황 CEO와 회의를 하며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엔비디아의 분기 사업 혁신 회의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본사에서 진행됐고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에는 화상으로 열리고 있다.
최근 신간 ‘엔비디아 DNA’를 출간한 유 대표는 황 CEO의 분노를 ‘지적 정직함을 위한 욕설’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분노가 정직함이 무너지는 순간 작동하는 일종의 경고 장치라는 이유에서다.
“한 번은 회의할 때 AI 시장 전망을 묻는 황 CEO의 질문에 마케팅 임원이 시장조사업체 IDC·가트너, 글로벌 회계법인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자료를 근거로 대답을 했어요. 그러자 황 CEO는 불같이 화를 냈죠. 본인이 고민한 답이 아닌 외부 기관의 수치를 빌린 답변에 사달이 난 겁니다.”
황 CEO가 참지 못하는 것은 실패나 실수가 아니라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이라고 유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황 CEO의 이런 성격 때문에 엔비디아에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조직이 가장 투명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CEO와 직원들이 업계 현안을 단순하게 공유하는 ‘톱5 싱스(Top 5 Things)’를 엔비디아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꼽았다. ‘톱5 싱스’는 황 CEO가 격주로 ‘이번에 내가 주목하는 다섯 가지’를 전 세계 임직원에게 보내는 짧은 e메일이다. 엔비디아 임직원들도 자기가 생각하는 ‘톱5 싱스’를 e메일에 올려 서로 공유한다. 유 대표는 “황 CEO와 직접 소통하는 핵심 임원이 60명 안팎인데 이들과 일대일로 의견을 나누지 않고 주로 ‘톱5 싱스’를 통해 한꺼번에 소통한다”며 “‘톱5 싱스’는 임원뿐 아니라 수만 명의 직원이 같은 판단 기준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톱5 싱스’는 엔비디아가 추론 최적화 소프트웨어 ‘텐서RT’를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구글 계정을 담당하던 엔비디아의 엔지니어가 구글의 트랜스포머(딥러닝 기반 자연어 처리 모델) 논문을 ‘톱5 싱스’에 올렸고 이를 본 황 CEO의 지시로 텐서RT를 개발하게 됐다. 유 대표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유응준 전 엔비디아 코리아 대표가 5일 서울 성동구 모티브 출판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유 대표는 한국 기업의 경직된 근무 환경과 조직 문화에는 쓴소리도 했다. 특히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연구개발(R&D) 인력도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하는 현실이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족쇄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 본사로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주말에 한 엔지니어가 사무실에서 덩치 큰 개를 옆에 두고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급한 업무를 맡은 엔지니어가 반려견 밥을 주러 집에 가야 한다고 하자 황 CEO가 개도 우리 가족이니 회사에 데리고 와서 일하라고 했대요. 이 같은 업무 융통성과 극단적인 일의 밀도가 엔비디아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원동력입니다.”
한국의 인공지능(AI) 산업 전략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유 대표는 “한국이 AI 분야에서 글로벌 빅테크나 미국·중국과 맞서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 역량과 제조업에서 생성된 풍부한 데이터를 갖추고 있는 만큼 제조업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에 집중하는 전략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