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파워(마이클 앨버터스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19~20세기 토지 소유 구조 대재편
인종차별·性불평등·환경파괴 불러
韓·日·대만 등은 재산권 보장 도입
도시화·경제 성장 ‘기폭제’ 되기도
단순 자산 넘어 사회·정치의 도구로
랜드파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병합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 배경으로는 원유·가스·희토류 등 풍부한 천연 자원이 지목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도 우크라이나가 비옥한 토양을 자랑하는 세계 3대 곡창지대라는 점이 꼽힌다. 이들 사례는 토지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세계 질서까지 뒤흔드는 정치·안보의 영역임을 잘 보여준다. 전 세계 주요국이 땅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각축전을 벌이는 배경이다.
신간 ‘랜드 파워’는 ‘누가 땅을 가졌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토지 소유와 권력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저자인 마이클 앨버터스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토지 권력과 불평등의 구조적 연관성을 연구해 왔다. 저자는 ‘토지는 권력’이라고 규정한다. 토지가 소유자에게 이익을 안기는 경제 권력일 뿐 아니라 지배 계층을 형성하는 사회 권력이자 지지자를 확보하는 정치 권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책은 먼저 19~20세기에 걸쳐 정치·경제적 요인과 인구 증가에 따라 나타난 토지 소유 구조의 변화를 살펴본다. 저자는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지 수탈, 유럽의 농노 해방, 동아시아의 토지 개혁 등 지난 2세기 동안 토지 소유 구조가 극적으로 변화한 현상을 ‘토지의 대재편’이라고 명명한다. 이후 토지의 대재편이 초래한 현대 사회의 다양한 병폐들을 추적한다. 토지 소유 구조가 바뀌면서 인종 차별과 성 차별, 환경 파괴 같은 부작용이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 만연한 인종 차별의 근원도 토지 분배에서 찾는다. 저자는 “미국 초기 역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강제 이주와 정착민의 토지 수탈은 새롭고 강력한 인종 질서를 만들어냈다”며 “새 질서는 잔혹한 차별 정책으로 공고해졌다”고 분석한다.
토지 소유권이 성 불평등을 강화한 사례로는 인도를 들었다. 인도는 1970년대 대지주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재분배했는데 당시 인도에는 재산을 아들에게 상속하는 관습이 있었다. 여성의 토지 상속권을 강화하는 법률도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토지를 아들에게 편법으로 증여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여야 사망률이 높아지고 아내 폭행 건수와 여성의 자살이 증가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토지 대재편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의 토지 분배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한다.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 개혁은 발전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경자유전 개혁 이후 새롭게 힘을 얻은 소농들은 자녀를 논밭에 내보내지 않고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일본은 도시화가 진전되고 교육 수준이 높아졌으며 경제 호황의 본거지가 되었다.(…) 경자유전 개혁은 한국과 대만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특히 토지 제도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요인으로 ‘재산권 보장’을 꼽는다. 옛 소련과 중국, 쿠바의 집단 농장은 토지 소유권과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아 농민들의 노동 의욕을 꺾고 투자를 꺼리게 만들어 생산력 저하로 이어졌다. 반면 1990년대 페루는 토지 소유자에게 명확한 소유권을 부여하는 토지 등기 제도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재산권이 경제 발전을 촉진함에도 정부는 토지 소유권을 제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토지를 대대적으로 재분배하는 정부는 정치적·사회적 이슈로 인해 수혜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통제력을 행사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재산권이 확고하게 정립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를 발전시키기도, 후퇴시키기도 하는 토지의 대전환은 미래에도 이어질까. 저자는 전 세계적인 인구 감소와 기후 변화가 주요 변수라고 짚는다. 인구 감소로 토지의 희소성이 지금보다 약화할 수 있지만 기후 변화가 가속화하며 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농촌 인구가 노령화하면서 한국에서 토지를 둘러싼 관계는 향후 수십 년간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420쪽, 2만 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