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예술의 ‘틀’ 깬 악동, 죽음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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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서 亞 첫 대규모 개인전

소머리·파리로 순환 표현한 ‘천년’

두개골 등 활용한 작품 50점 선봬

英서 운영한 레스토랑 ‘약국’ 재현

미공개 신작 첫 공개…6월 28일까지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들고 있는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 2026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

눈을 뜬 채 목이 잘린 소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커다란 유리장 한쪽에선 부화한 파리들이 피 냄새를 맡고 날아든다. 윙윙거리던 파리가 전기 살충기에 걸려 죽고, 바닥에 떨어지기까지는 찰나다. 생명의 시작과 생존의 본능, 허망하고 무작위한 죽음이 무한 반복되는 작품. ‘현대미술계의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61)의 1990년작 ‘천 년’이다. 산 목숨을 재료로 했기에, 미술관 측은 정기적으로 파리를 관리하고 파리 유충을 공급해줘야 한다. 죽을 것임을 알면서.

피 흐르는 소머리와 살아있는 파리를 통해 삶의 순환과 덧없는 죽음을 상징한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 ‘천 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예술성과 상업성을 극단적으로 넘나들며 ‘문제적 작가’로 불리는 허스트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2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막을 올린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50여점을 통해 40여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조망한 전시다.

1965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허스트는 반항심 가득한 청년기를 보냈다. 그림은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미술 명문 골드스미스대학교에 재학중이던 1988년,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를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함께했던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YBA(Young British Artists)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으며 런던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작품으로 미술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허스트는 1995년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지만 동시에 돈벌이를 위한 상업적 전략에 능수능란하다는 악평을 받았다.

데이미언 허스트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도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인간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1개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대표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이다. 18세기 인물로 추정되는 실제 인간 해골에서 가져온 치아가 보석사이로 반짝인다. 죽음의 해골과 영원한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가 결합해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을 표현했다. 2007년 익명의 투자자 집단이 5000만 파운드(약 994억원)에 구입했다고 갤러리가 발표했지만, 투자자 중 하나로 작가 자신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2022년에 알려지며 ‘마케팅 논란’이 일었다. 이번 출품작 중 유일하게 보안요원이 근접 감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푸른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거대한 상어가 떠 있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도 그의 대표작이다. 공포의 존재인 상어는 죽음을 맞았지만 보존액에 담겨 불멸의 긴장을 보여준다. ‘상어수조’ 연작 중 하나인 2008년작 ‘킹덤’은 그해 9월 작가가 직접 경매에 출품해 당시 환율로 약 188억원에 팔렸다. 허스트를 상징하는 ‘약장’ 시리즈의 첫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가 본인의 생명을 지켜줄 대상으로 신이 아닌 약 봉지에 의지하는 모습을 목격한 작가는 현대인이 종교 이상으로 신봉하는 과학,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전시장 MMCA스튜디오에 데이미언 허스트의 런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아 관람객은 미공개 신작 ‘리버페인팅’을 전세계 최초로 만날 수 있다. /사진=조상인기자

볼거리가 많은 전시다. 허스트가 1998년 런던에서 오픈해 6년간 운영한 레스토랑 ‘약국’을 그대로 옮겨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지하 서울박스에서 1층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앞 MMCA스튜디오다. 템즈강이 내려다 보이는 작가의 작업실을 통째 서울로 옮겨다뒀다.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하늘색 바닥재를 뜯어올 정도로 생생한 작업실 상황을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여기에 관람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전세계 최초로 공개한 ‘리버페인팅’이다. 야수파 거장 앙리 마티스의 ‘콜리우르의 열린 창’(1905)에서 영감을 얻은 허스트가 “(스튜디오에서 템스 강가를 보다가) 문득 내가 오랫동안 이 풍경을 바라보며 작업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예전에 본 마티스의 작은 작품 하나가 떠올랐다”면서 “문득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을 그 그림처럼 그리면서, 추상표현주의 회화처럼 거대한 크기로 그려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3년째 ‘리버페인팅’ 연작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작업실을 재현한 전시 덕에 한국의 관람객들은 세계 최초로, 허스트의 미공개 신작을 보게 된 것이다. 6월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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