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배신 (조너선 굿먼 지음, 다산초당 펴냄)
다정함의 배신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생물학의 오랜 논쟁은 한때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명제로 수렴됐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경쟁하고 착취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사이에는 협력과 배려, 즉 다정함이야말로 인류를 번영으로 이끈 핵심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신간 ‘다정함의 배신’은 이처럼 팽팽히 맞서온 두 관점을 넘어서 인간 본성을 보다 복합적이고 냉정하게 들여다본다.
이 책의 저자 조너선 R. 굿먼은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낙관하거나 ‘이기적 존재’로 단정하는 이분법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의 협력이 결코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타인을 속이고 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 속에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협력적인 동물이 아니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그의 말처럼, 그 능력은 상황에 따라 이기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재자 게임’이다. 두 명의 참가자 중 10달러를 가진 ‘독재자’는 아무것도 없는 타인에게 원하는 만큼 돈을 나눠줄 수 있다. 이기적인 존재라면 모든 돈을 차지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일정 금액을 나누는 선택이 나타난다. 이는 도덕적 행동을 통해 신뢰와 평판이라는 자원을 축적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분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때, ‘독재자’가 돈을 나눌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협력이 미덕이면서 동시에 경쟁의 또 다른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은 인류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가로지르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민족지 연구, ‘죄수의 딜레마’ 같은 실험, 그리고 홉스와 루소의 고전적 논쟁까지 폭넓은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협력은 도덕적 진보의 결과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전략적 행동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이 뛰어난 언어 능력과 사회적 지능을 바탕으로 이익 추구의 전략을 은밀히 숨기는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고, 때로는 더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협력하는 척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전략적 다정함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