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인간의 행동은 독립적 선택 아닌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의 결과물
과학적 탐구로 자유의지론 반박
유년시절 부정적 경험 많을수록
반사회적 행동할 가능성 높아져
성공도 의지보다 환경과 운 때문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
1983년 벤저민 리벳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금도 논란을 빚는 유명한 신경과학 실험을 실시했다. 리벳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원할 때마다 버튼을 수시로 누르고 언제 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뇌파 데이터를 통해 뇌의 활동을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한 순간보다 0.3초 전에 뇌가 이미 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뇌가 미리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25년 뒤 독일 연구진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해 실험을 발전시키자 피험자가 버튼을 누르기로 마음먹기 최대 10초 전에 뇌가 결정을 내렸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선택은 어떤 옷을 입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같은 사소한 것부터 어떤 직업을 갖고 무엇을 추구할지 등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까지 다양하다. 과학계와 철학계에서는 이 같은 인간의 선택이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자유로운 것’인지를 두고 오랜 논쟁을 벌여왔다. 현재 학계에서는 인간의 행동은 결정론을 따르지만 자유의지도 있다는 양립주의가 주류를 이룬다.
신간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이 상호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저자인 로버트 M.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다. 그는 뇌과학·생물학·물리학 등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독립된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신화를 허문다.
저자는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의도는 불과 몇 초나 몇 분 전부터 수십 년 전 청소년기나 아동기에 일어난 사건, 심지어 수 세기 전 조상들의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몇 분에서 며칠 전에 싸우거나 다쳐서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아지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대·방치 등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대해 매긴 점수가 한 단위 높아질 때마다 성인이 돼서 반사회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35%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임신한 여성이 스트레스를 받아 특정 호르몬이 분비되면 태아가 성인이 됐을 때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
밥을 언제 먹었는지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1000건이 넘는 판사의 가석방 결정을 분석한 결과 판사가 식사를 한 지 오래됐을수록 죄수에게 가석방을 허가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 후 시간이 지날수록 뇌가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데 무뎌져 죄수를 다시 감옥에 보내는, 쉽고 습관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결정론이 맞다면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유전자나 환경 탓에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범죄자의 잘못이 없더라도 대중을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격리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응보적 사법제도는 피해가 클수록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 과거지향적 비례성에 기초한다. 그에 반해 형사적 격리 모델은 미래에 더 많은 위험이 예상될수록 더 많은 제약이 필요한 미래지향적 비례성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좌우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개천에서 용이 되기를 포기한 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생물학적·환경적 운에 좌우되는 만큼 성공한 사람을 칭송하거나 열등한 사람을 무시할 이유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는 수긍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논의에 불쾌감을 느낀다면, 가장 가능성 높은 이유는 당신이 운 좋은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당신은 자의가 아닌 것에 의해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는 신화로 자신을 가릴 수 있을 만큼 특권을 누리고 있다.” 능력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던지는 도발적인 메시지다.
648쪽, 4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