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에 의약품·의료제품 수급 어렵다는 민원 쇄도
의료소모품 비축량 적은 동네의원들 중심 위기감 확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3일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주사기, 수액제 포장재를 생산하는 에이디켐테크 공장을 방문,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핵심 산업과 의료용품, 생필품 등 중동 전쟁으로 수급 우려가 있는 품목 생산 현장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 추진 현황을 공유했다. 연합뉴스
“인터넷에선 주사기도, 주사침도 품절이라 주문할 수가 없어요. 현재 남은 양으로는 보름 이상 버티기 힘듭니다. ” (성남 수정구 A의원 관계자)
미·이란 전쟁이 한달 넘게 이어진 데다 휴전에도 호르무즈 봉쇄가 풀리지 않으면서 의료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동네 병원을 중심으로 주사기를 비롯한 기본 의료물품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제품 관련 사재기와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정작 현장에선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지역의사회 등에는 주사기, 주사침, 수액라인, 장갑 등 각종 의료소모품이 부족하다는 의사 회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진료현장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의료소모품이 대부분 석유화학 원료로 생산되는 데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자 불안감이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의 혼란이 크다. 통상 2∼3개월분의 의료제품 재고를 유지 중인 대형병원과 달리, 의원급 의료기관은 수액제, 주사기 등 비교적 값이 싼 물품의 재고를 굳이 확보해두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태 성남시의사회장은 “의약품 및 의료제품, 의료기기 부족 여부를 알아봐달라는 복지부의 요청에 따라 800곳에 연락을 돌렸고 오후 9시 기준 85곳에서 부족하다는 응답을 받았다”며 “지금도 계속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성남시의사회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부족한 품목은 주사기, 주사침, 수액 세트 등에 집중됐다. 멸균 증류수나 약포지, 약병 등 조제 관련 소모품과 장갑 외에 알보칠, 인데놀, 디펩티벤, 생리식염수 등 특정 의약품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있었다. 주거래처인 인터넷몰이 ‘품절’, ‘재고 없음’, ‘주문 불가’ 등으로 도배가 된 데다 주문 후에도 재고가 부족하다며 취소되는 사례가 속출하자 의사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김 회장은 “매일 주사 맞을 사람에게 이틀에 한 번 놓는 식으로 주사기를 아끼는 병원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의약품 도매상 총 동원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태가 장기화하고 수급 자체가 막히면 대형 병원 등에서 차용해 오는 등의 해결책을 모색할 생각이다.
7일 서울의 한 의료기기 판매점에 5cc, 10cc 등이 진열돼 있던 주사기 매대가 비고 1cc, 2cc 등의 소용량 주사기만 남아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수액제 포장재와 주사침 3개월분, 주사기 1개월분 이상의 재고가 확보돼 있으며 이 재고를 소진하더라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원료로 추가 생산이 가능하다며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원료 가격 인상에 따라 의료 소모품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어, 현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긴 쉽지 않아 보인다. 현행 제도에서 주사기, 수액세트, 수술용 장갑, 카테터 등은 건강보험상 ‘산정불가’ 품목으로 지정돼 있다. 가격이 오르면 개별 의료기관이 고스란히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일각에선 정부가 추진해 온 사재기 방지 대책이 되레 현장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원망이 새어나온다. 이정용 대한내과의사회장은 전일 춘계학술대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 병원에도 주사기 제고가 1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주사기도, 수액세트도 없다“며 ”물품 공급이 부족해지면 일부 가수요가 있을 수 있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사재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정부가 거듭 밝힌 대로 생산 단계에 문제가 없다면 유통 단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냐”며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서둘러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