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진영 작가
[파이낸셜뉴스] 역사는 발전한다는 낙관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더 많이 고달프겠는가. 수시로 괴롭고 우울한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은, 다가오는 미래는 지금보다 좋아질 거라는 기대다.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이 고통스러운 현재를 견디게 한다.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유행이 몇 년 전에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지옥 같은 곳이 아니다. 오히려 지구상 여러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이곳은 지금껏 좋아졌던 추세를 타고 앞으로도 발전할 거라는 희망을 품기에 충분한 나라다. 인간은 본디 ‘나만 빼고 다 잘나가’라는 박탈감을 마음 밑바닥에 깔고 사는 존재라 그 유행어는 분에 넘치는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60년 세월 동안 대한민국은 놀라운 속도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여러 의미로 풍요로워졌다.
소설이 작가의 눈에 비친 한 시대의 풍경화라면, 신성민 작가의 소설 '계엄군'은 1980년 5월의 비상계엄과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사이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엔 분명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붓칠에 담아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허 중령은 12월 3일의 비상계엄의 그 밤, 국회로 진입하라는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다. 한 편의 부조리극 같았던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평화롭게 밝을 수 있도록 기여한 군인이다. 헌법 재판소의 탄핵 인용 판결문 중,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는 구절이 있다. 비록 단 한 줄이지만 큰 무게가 담긴 이 문장에서 출발한 작가의 상상력이 구현시킨 캐릭터다.
소설 속 어린 허 중령은 아버지를 괴롭히는 형체 모를 고통을 보며 그것이 ‘네스 호의 네시’ 같은 괴수일 거라 상상하며 생각한다. “괴물이라면 언젠가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아버지가 1980년 광주의 폭력을 기억하는 죄책감 속에 한 생을 버텼다면, 아들인 ‘나’는 국회 본관 앞 역사의 한복판에서 “아버지의 충혈된 눈 속” 괴물의 실체와 마주한다.
마침내 아들은 아버지가 하지 못했던 항명의 결단을 내린다. 비록 그 어둠은 1980년 신군부의 총구에서 2024년의 비상계엄으로 형상을 바꿔 나타났지만, 그 사이 우리의 시민의식과 양심과 용기는 한 걸음씩 착실히 전진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괴물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작가는 역사의 발전에 대한 신뢰를 독자에게 전한다.
허 중령 같은 군인들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과 시민들의 저항에 힘입어 80년 같은 비극으로 악화되는 사태를 모면했다. 그러나 2024년의 비상계엄이 남긴 트라우마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헌재가 비상계엄이 위헌 불법이라고 판결했고 사법부는 내란 우두머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건만 그 계엄이 ‘공산화 독재 세상을 막으려던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지지 세력으로 의지하는 정치인들이 보수 야당의 지도부에 앉아있다.
소설 속에는 80년의 광주 현장으로 향하던 아버지가 목격했던, 실체 없는 적을 상정하고 대원들에게 ‘독기’를 불어넣어 인위적인 증오를 배양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작가는 24년의 비상계엄을 두고 ‘종북 세력이 나라를 넘기려는 위기를 막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우기며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이들이 제도권 정치 안에서 기세등등한 지금의 현실은 44년 전의 야만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다고 경고하고 싶었을까.
역사의 발전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는 동시에 그 어둠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우리가 되돌림 없는 발전을 선택했던 그 시간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다시는 그 불의의 밤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경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가 일궈온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을 지켜내는 길이라고 작가는 담담한 어투로 우리를 일깨운다. 이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도 인간의 존엄과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