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신영체임버홀 기자간담회
앨범 <슈베르트> 발매...다음 달부터 투어
"슈베르트, 천국에서 온 건가 착각 들게 해"
"음악 하는 사람이면, 음악을 생각해야"
“올해 80세가 되니까 이제 남은 건 음악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부터는 정말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가진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스1.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연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6일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새 앨범 <슈베르트>를 발매했다. 그간 마음에 담아뒀던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녹음했다. 그는 “슈베르트 음악은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닌 것 같다”며 “천국에서 온 건가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초년에 만난 슈베르트, 다시 말을 걸었다
백건우의 음악 인생은 올해가 70주년이다.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10세에 해군교향악단(오늘날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데뷔했다. 스스로 “레퍼토리가 굉장히 많다”고 할 만큼 쌓아온 연주곡들도 한가득이다.
2024년과 지난해 모차르트를 탐구했던 백건우는 이번엔 슈베르트의 소나타에 심취했다. 그는 슈베르트에 대해 “모차르트는 구상 면에서 음이 더 복잡한데 슈베르트는 더 자연스럽게 (소리가) 흘러나온다”고 설명했다.
백건우의 앨범 <슈베르트> 커버. /자료출처. 유니버설뮤직.
그가 새 앨범에 담은 슈베르트의 소나타 곡은 모두 4곡. 13·14·18·20번이다. 다섯 곡을 마음에 뒀지만 CD 분량의 한계 상 짝수로 곡을 묶다 보니 4곡을 하게 됐다고. 이 중 13번은 백건우가 자신의 음악 인생 초기에 배워 늘 마음 한편에 간직했던 곡이다.
“이 곡을 선택한 건 제 마음이 통했다고 할까요. 곡을 선정할 때는 그 곡이 나에게 뭔가 말하는 게 있을 때 선택을 하게 되죠. 그걸 말로 표현하긴 어려워요. 다른 예술가나 작가, 철학가들이 음악을 풀이하는 걸 보면 참 놀라워요. 그분들은 글로 음악을 표현하니 상상 못 할 이야기들을 하는데 전 곡을 설명하라 하면 피하는 편이에요. 소리로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제 의무고, 그걸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백건우는 젊었을 적 자신의 인생 세 번째 녹음으로 슈베르트 소나타를 연주한 적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인 21번 내림나장조였다. “당시엔 눈앞에 그 마지막 소나타밖에 안 보여서 그 곡과 같이 살다시피 했다”고. 젊은 시절 연주했던 슈베르트와의 비교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해석하려면 적어도 세 번은 되돌아와야 한다고 얘기들 하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면 20년, 30년이 걸려요. 이렇게 계속하는 건 불만스러운 점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그 곡을 제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때문에 계속 돌아오는 거죠. 죽을 때까지 계속될 거예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가진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스1.
“음악에 정해진 답 없어, 스스로 찾아야”
팔순에 이른 지금의 백건우는 “피아니스트에게 은퇴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연주할 가능성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그 형태가 독주, 협연, 반주 등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단 말이었다.
그에게 음악이 무엇인지를 묻자 백건우는 “끊임없이 스스로 알아서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 답했다. 외부에서 주어진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감각과 인지로 음악을 해석하고 이를 구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건반 위의 구도자’란 그의 별명이 떠오르는 말이었다. 정작 그는 “누구나 자기의 일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분이라면 구도자”라며 “(이 별명이 제게는) 조금 무겁다”고 했다.
백건우는 올 하반기에 자서전도 내기로 했다. 그는 “(데뷔 이후) 70년간 세상이 많이 변했고 그 사이 겪은 이야기가 많다”며 “이걸 알리는 게 제 의무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직접 쓴 글로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가 음악을 대했던 태도가 지금하고는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 무엇보다도 음악을 생각하고, 음악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가진 데뷔 7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얼마 전 어느 콩쿠르에서 젊은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끝내고 나서 제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재주 있는 친구였는데 전 한마디로 ‘넌 음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냉정하게 얘기했어요. 이게 무슨 뜻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렇다’고 인정하더라고요. 콩쿠르에서 이기는 게 중요했고, 이름이 빨리 나는 게 중요했고,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게 중요했고, 음악을 이해하고 진짜 음악이 되려 하는 것에서 멀어져 있었다는 걸요.”
“일생이 너무 짧아요”
백건우는 후대의 연주자들에게 현대 작품을 많이 연주했으면 한다는 뜻도 드러냈다. “제가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할 땐 현대음악을 많이 가르치던 때가 아니었어요. 유럽도 특별히 현대음악을 중시하진 않았는데 제가 보기엔 참 중요해요. 저도 현대곡을 작곡가와 같이 작업하고 세계 초연으로 연주도 해봤지만 우리(피아니스트)는 쓰여진 곡을 청중에게 알리는 역할이잖아요. 200~300년전의 작품에 머물러 있어야하나 생각해보죠. 내 손으로 처음 울리는 울림을 우리가 책임지고 좋은 연주로 보이게 되면 그 이상 흥분되는 일이 없죠.”
백건우는 다음 달부터 전국 12개 도시를 돌며 관객을 만나는 리사이틀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오는 5월 10일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이 무대에선 앨범에 담은 슈베르트 소나타 13·20번와 함께 브람스 4개의 발라드(작품번호 10)도 연주한다. 브람스 발라드는 “전부터 연주하고 싶은 곡이었다”고.
“워낙 좋은 곡들이 많고, 하고 싶은 곡들이 많은데 다 못한다. 일생이 너무 짧다”는 그의 말엔 열정이 묻어나왔다. “제가 이 프로그램에서 뭐를 보여주고 싶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훌륭한 연주는 플라톤이 얘기했듯이 우리에게 환상의 날개를 달아줍니다. 그게 음악의 힘인 것 같아요.”
백건우의 앨범 <슈베르트> 커버에 실린 사진 /사진출처. 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