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중티 난다" 비웃었는데…슬금슬금 뚫리더니 '韓라이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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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티 난다' 놀림받았는데

안방·SNS 슬금슬금 점령한 '중국 감성'

OTT서 중국 드라마 '인기'

릴스 넘길 때마다 "중남 만나는 법"

거부감 뚫고 장악한 '중티'의 역습

'축옥'에 출연한 중국 배우 전희미, 장릉혁과 '소요'의 후명호, 담송운. /사진=아이치이 인스타그램

"나 지금 너무 '중티' 나지 않아?"

46만 구독자를 보유한 한중 커플 유튜버 '여단오'의 영상 속, 한국어에 능통한 중국인 남자친구 여루는 거울을 보며 쑥스러운 듯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중티(중국 티가 난다)'라는 표현은 촌스러움이나 세련되지 못한 미감을 비꼬는 조롱 섞인 비속어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이 단어의 소비 방식은 달라졌다. '왕홍(중국 인플루언서) 스타일'로 변신해 특유의 감성을 즐기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변모한 것이다. 한국 대중이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장벽이 어느 때보다 낮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아이치이 캡쳐

이러한 정서적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수치로도 확인됐다. 지난달 공개된 중국 드라마 '축옥'은 회차 공개 날마다 '오늘의 대한민국 톱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공개를 시작한 '월린기기'도 마찬가지다.

토종 OTT인 티빙에서도 '쌍궤'와 같은 중국 드라마가 순위권에 진입했으며, 웨이브의 해외 시리즈 부문에서는 미국, 영국, 일본 드라마를 제치고 중국 드라마가 20위권 내를 모두 포진하고 있다. 과거 중년층이 '의천도룡기' 등을 보던 일부 중장년층 매니아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젊은 층까지 '중드(중국 드라마)'를 향유하는 층이 넓어진 셈이다.

/사진=아이치이 캡쳐

중국 드라마가 최근 들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영상미와 과거의 진부함을 탈피한 압축적 전개에 있다. 그간 중드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지루한 장편 서사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회차를 대폭 줄이고 전개 속도를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과거 60부에 달하던 방대한 분량이 최근에는 24~40부작 내외로 짧아지며 한국 드라마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빠른 호흡을 보여준다.

특히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주인공들의 파격적인 성장 서사는 젊은 층을 사로잡은 결정적 요인이다. 고난을 묵묵히 견디는 전통적인 주인공상에서 벗어나, 압도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먼치킨형'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이 적대 세력을 상대로 펼치는 거침없는 복수와 성공 가도는 이른바 '사이다' 같은 쾌감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비주얼 측면에서의 공세도 거세다. 14억 인구의 넓은 인재풀은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비해 선이 굵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배우들이 주를 이루며,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는 190cm 이상의 장신을 자랑하는 이른바 '문짝 남신'들이 즐비하다. 여성 배우들 또한 디리러바처럼 서구적인 화려함부터 서약함과 같이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청순함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막대한 자본력이 더해진 스타일링은 소위 말하는 '중티'를 지워냈다. '허안요안' 조로사와 같은 배우들의 경우 한국 현지 스태프들이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전담하며 국내 연예인과 이질감이 없는 세련된 미감을 완성했다. 엑소의 레이, 에프엑스 빅토리아, NCT 윈윈(둥쓰청) 등 한국 활동 경험이 풍부한 아티스트들이 현지에서 주류로 자리 잡았고, 임가륜과 형소림 등 한국 소속사 연습생 출신들도 눈에 띈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이들의 행보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번역하는 계정들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를 장악한 숏폼 콘텐츠다. 중국 특유의 자극적인 연출과 속도감을 앞세운 숏폼 드라마들이 국내 플랫폼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기존 K-드라마의 시청 시간을 빼앗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포착된다. K-드라마의 텃밭이었던 인도 등 신흥국에서도 시청층이 'C-드라마'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중국 스타일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박명수, 한가인, 곽범, 이미주 등 유명 연예인들이 '왕홍 메이크업'에 도전하며 화제를 모았고, 뷰티 유튜버들 사이에서 중국식 화장법 튜토리얼은 필수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중국 남성과 오토바이를 타고 사진을 찍는 '중티 남친 체험' 게시물이 쏟아진다. '중국 남자 만나는 법' 같은 키워드가 릴스 추천 피드를 장식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정치적 갈등과 별개로 "재미있으면 소비한다"는 실리적 태도를 보이면서 중국 콘텐츠의 확장성이 극대화됐다고 진단한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한국 내 중국 콘텐츠 소비는 증가했으나, 반대로 한국 콘텐츠의 중국 진출은 그렇지 못하다. 올해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문화 콘텐츠 교류를 언급하며 "석 자 얼음은 한 번에 녹지 않고, 과일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 한한령을 부인해온 중국 최고 지도자가 단계적 변화와 시간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시사해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됐다 .

지난 3월 18일 김종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베이징에서 '지식재산권 이용위원회' 재설립에 합의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설립됐으나 정권 교체와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이 위원회는 중국 내 한국 콘텐츠 저작권을 보호하고 교류를 확대할 핵심 채널이다. 홍콩 성도일보는 이를 "한한령 완화를 위한 분명한 신호"로 해석했다. 실제로 국내 4대 기획사가 중국에서 대규모 K팝 공연 개최 문의를 받는 등 현장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한령은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중국의 폐쇄적 콘텐츠 규제 시스템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원천 배제된 시장이다. 텐센트비디오, 아이치이 등 자국 플랫폼이 MAU 3억 명 이상을 확보하며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해외 콘텐츠 비중을 30%로 제한하고 엄격한 사전 심의를 거치게 하는 구조적 장벽은 여전하다. 한한령이 완화되더라도 한국 콘텐츠가 과거처럼 쉽게 입성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내 제작 환경의 악화도 변수다. 최근 공식 출범한 '한국드라마PD협회'는 급변하는 유통 구조 속에서 제작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협회는 글로벌 OTT와의 저작권 분쟁, 중국 숏폼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주요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프리랜서 PD들의 목소리를 모을 구심점이 부족해 드라마 정책이 방향을 잃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롱받던 '중티'는 이제 K-콘텐츠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탈바꿈했다. 안방의 스트리밍 목록에는 중국발 콘텐츠가 박혀있고, 쇼셜미디어의 경계선은 '왕홍 감성'에 의해 허물어졌다. 반면 한국 콘텐츠는 여전히 중국의 규제 틀 안에서 얼음이 녹기만을 기다리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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