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연출 맡은 스티븐 달드리 내한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실업자가 크게 늘고 공동체가 위협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라이브로 보는 경험은 재현할 수 없습니다.”
‘빌리 엘리어트’ 영화와 오리지널 뮤지컬을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사진)는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라져가는 분야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작품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라며 19980년대 탄광촌 이야기지만 오늘날 AI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달드리는 국내 공연 개막에 맞춰 방한했다. 전날 프리뷰 공연과 리허설을 모두 지켜본 그는 “오랜만에 작품을 다시 보니 감정이 북받쳤다”며 “배우들의 연기는 환상적이었고 무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빌리 역의 김승주에 대해 “이 역할은 마라톤을 뛰면서 햄릿을 연기하는 것과 같은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2000년 영화로 시작해 2005년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뮤지컬은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10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다. 달드리는 장수 비결로 ‘보편성’을 꼽았다.
탄광 파업이라는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한 소년이 춤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공동체가 이를 지지하는 과정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작품의 뿌리에는 1980년대 영국 사회를 뒤흔든 변화가 있다.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 시기 탄광과 제조업이 급격히 쇠퇴했고 관련 공동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달드리는 “젊은 시절 광부 마을에서 연극을 하며 그 변화를 직접 겪었다”며 “대처 정부는 노동자 계층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결과 영국 제조업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극 마지막에 광부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장면은 희망이라기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에 가까운 비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때는 제조업이 무너졌다면 지금은 AI가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며 “일자리 감소와 공동체 붕괴라는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라이브 공연 경험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무대 예술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영화와 연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작업해온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화 ‘디 아워스’, ‘더 리더’, TV 시리즈 ‘더 크라운’ 등을 연출한 그는 “리바이벌보다는 새로운 작업에 더 관심이 있다”며 “작곡가와 함께 뮤지컬 신작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