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출판사 비결]②
염종선 창비 대표이사 인터뷰
70원 소책자로 시작, 매출 400억대로
'비판적 담론' 정체성 지킨게 성장 비결
AI시대에도 인간이해 노력 지속해 와
오디오북·온라인·유튜브 등 외연확대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문학적 전통을 지닌 창비가 좋은 작가들과 만나 시너지를 냈기에 60년을 이어올 수 있었죠.”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출판사 창비의 염종선(59) 대표는 2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장수 비결에 대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기획력이 빛을 발한 결과”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가 70원의 132쪽짜리 잡지로 시작한 창비는 연 매출 400억 원 규모의 출판사로 성장했다. 지금도 잡지는 꾸준히 발행되고 있으며, 2026년 봄호 기준 종이잡지 발행부 수는 9000부 수준이다. 정기 구독자는 종이 7500명과 전자 2500명을 합쳐 1만 명에 이른다.
염 대표는 1995년 창작과비평사에 편집자로 입사해 편집국장, 상무이사, 창비그룹 경영지원실장 등을 지냈다. 그는 “인공지능(AI)이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라며 “창비의 경쟁력은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문적 가치에 있다. 사회를 성찰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독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염종선 창비 대표이사(사진=창비).
창비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맞물려 있다. 1966년 계간지 ‘창작과비평’으로 출발한 창비는 문학과 사회 비평을 결합한 지면으로 빠르게 주목받았다.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문학소녀 애순이가 ‘창작과비평’ 창간호를 손에 든 장면은 단순한 소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창비 한 두 권쯤은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컸고, 지식과 현실을 잇는 통로로 읽혔다. 제작진이 실제 창간호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한 이 장면은 책이 곧 시대를 이해하는 창이었던 시절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1970년대 유신 체제 아래에서 비판적 담론을 다뤘다는 이유로 검열과 압박이 이어졌고, 1980년 전두환 군부에 의해 결국 강제 폐간됐다. 이후 1985년에는 무크지(잡지와 책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비정기 간행물) 형태로 통권 57호를 발간하며 명맥을 이어갔지만, 이 과정에서 출판사 등록이 취소되는 시련도 겪었다. 염 대표는 “구속을 각오하고 사회비판적 발언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압수수색도 수 차례 겪었다”면서 “당시 정세를 고려하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7년 동안 발행이 금지됐던 창비는 1987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복간에 성공했다. 이후 2003년 회사 이름을 ‘창비’로 바꾸고, 문학을 넘어 인문·사회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출판사로서 기반을 다시 다져갔다. 그는 “백낙청 편집인과 김윤수 발행인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한다’며 지켜낸 저항정신이 창비의 근간이 됐다”고 짚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애순이가 ‘창작과비평’ 창간호를 들고 있는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창비가 격변의 시대에도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비판적 종합지’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변화에는 누구보다 유연하게 대응해온 데 있다. 염 대표는 “종이책이라는 기반을 지키면서도 오디오북·온라인 플랫폼·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독자와의 접점을 넓혀왔다”며 “출판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담론을 생산하고 독자와 지식 세계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창비는 미래 사업으로 출판 저작권 수출과 지식재산권(IP)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소설 ‘나의 완벽한 무인도’와 ‘타로카드 읽는 카페’가 유럽과 영미권 주요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체결하며 해외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린이 시리즈 ‘고양이 해결사 깜냥’도 본격적인 애니메이션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염 대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달라진 K문학의 위상을 심감한다고 했다. 그는 “순수문학뿐 아니라 장르 소설 등에도 해외 출판사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면서 “K컬처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만큼 창비 역시 K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988년 2월27일 계간 ‘창작과비평’ 복간 기념 현판식. 미술평론가 김윤수(왼쪽)와 문학평론가 백낙청(사진=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