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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도 그림은 판다…'화랑미술제' 모래바람 뚫고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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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화랑미술제' 8일부터 닷새간

역대 최대 169개 화랑·갤러리 집결

동일 부스서 오직 작품으로만 승부

정상화·김윤신 등 거장들 화업 위에

젋은작가 비중 키워 시장지속 꾀해

중동 불확실성 가중 속 올 시장 가늠

44회째를 맞는 ‘2026 화랑미술제’가 8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일까지 닷새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는 역대 최대인 169개 화랑·갤러리가 참여한다. 국제갤러리가 출품하는 김윤신의 회화 ‘영혼의 빛 2025-49’(2025·위)와 가나아트가 솔로부스로 꾸리는 문형태의 작품 중 ‘에펠탑’(2023·아래). 가운데는 지난해 ‘2025 화랑미술제’ 전경이다(사진=국제갤러리·가나아트·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봄바람이 마냥 부드럽지 않았다. 몇 해에 걸쳐 그랬다. 바람 사이에 모래가 서걱거렸다고 할까. 해마다 따뜻한 기운이 퍼질 무렵 ‘그림 팝니다’라는 소식을 알려온 ‘화랑미술제’가 말이다. 과연 모래 박힌 그 바람이 올해에는 방향을 바꿀 수 있으려나.

올 한 해 미술시장이 화랑미술제를 신호탄 삼아 본격적으로 문을 연다. ‘2026 화랑미술제’는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C&D홀에 큰 장을 연다. 8일 하루를 VIP 프리뷰로 개방하고 9∼12일 나흘간은 일반 관람객을 맞는다. 총 169개 화랑·갤러리가 예열을 마쳤다. 참여하는 화랑·갤러리 수로는 이제껏 중 최대다.

‘2025 화랑미술제’ 전경. 지난해에는 개장시간 등 일부 시간대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북적이지 않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신진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나왔으나 컬렉터들은 ‘검증된 신진’에 지갑을 열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대한민국 최초의 아트페어이자 최장수 미술장터인 화랑미술제는 오래도록 한 해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떠보고 가늠하기도 하는 척도로 여겨져 왔다. 첫봄의 첫 장이기도 했고, 여느 아트페어에 비해 시장을 체감하기에 용이하기도 했다. 한국화랑협회 소속 회원사인 화랑·갤러리로만 꾸리는 만큼 해외시장, 해외갤러리 등 여타 변수에 영향을 덜 받기도 해서다. 게다가 참여하는 화랑·갤러리는 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한 조건의 공간(6×6m 부스)에서 전시하고 거래하도록 규정한 게 특징이다. 계급장 떼고 오로지 작가와 작품만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할까.

특히 올해 화랑미술제에는 뜻깊은 의미 하나가 더 실린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국화랑협회의 역사를 입는 거다. 1976년 동산방·명동·양지·조선·현대화랑 등 5개 화랑 대표들이 ‘건전한 미술시장 만들기’를 목표로 만든 단체가 바로 한국화랑협회다. 그렇게 발을 뗀 한국화랑협회는 1979년 비로소 공식적인 행보를 세상에 알렸는데, ‘제1회 한국화랑협회전’(화랑미술제 전신)이 그거였다. “미술작품도 한데 모아놓고 팔고 살 수 있구나”를 국내에 처음 알린 화랑미술제는 올해로 44회째다.

‘2026 화랑미술제’에 나서는 젠박의 ‘식사 사이에’(Between Meals, 130×194㎝, 2025). 공근혜갤러리 부스에 걸린다(사진=공근혜갤러리).

국내 미술시장이 바닥을 치면서 휘청거렸던 지난 몇 해를 봄날의 ‘모래바람’에 비유했지만, 사실 객관적인 조건은 올해야말로 최악이다. 중동에서 터진 전쟁 탓에 늘 입버릇처럼 말해온 ‘불확실성’은 더더욱 치솟는 중이니까. 환율이나 주가, 뭐 하나 안정적인 게 없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말이다. 전쟁통에는 가지고 있는 그림도 내다 팔지 않았던가.

갤러리스트 안목까지 내거는 ‘솔로부스’ 주목

하지만 전쟁이 나도 그림시장은 열린다. 가나아트,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PKM갤러리 등 국내 미술시장 선두주자들은 물론 갤러리바톤, 갤러리조은, 공근혜갤러리, 금산갤러리, 리안갤러리, 박여숙화랑, 아트사이드갤러리, 아뜰리에아키, 우손갤러리, 이화익갤러리, 표갤러리 등 국내 미술계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갤러리들은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노화랑, 동산방화랑, 맥화랑, 미광화랑, 샘터화랑, 선화랑, 수화랑, 예화랑, 조선화랑, 조현화랑, 진화랑 등 ‘화랑’이란 명칭 그대로 한국화랑협회와 역사를 함께해 온 갤러리들은 올해 유독 관심을 끈다.

‘2026 화랑미술제’에 출품하는 정민우의 ‘새’(50×50㎝, 2024). 자폐성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품만으로 꾸리는 노화랑 부스에 나선다(사진=노화랑).

갤러리현대는 지난 1월 타계한 정상화의 작품을 내고 거장의 큰 그림자를 더듬는다. 국제갤러리는 원로작가 김윤신과 중진 박진아, 신진 김세아 등의 회화작품을 어울린다. 선화랑은 캔버스에 석고를 쌓고 깎아내리는 작업을 하는 우병윤의 작품을 꺼내놓고, 공근혜갤러리는 이태 전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줌인 특별전’에서 대상을 받은 젠박의 신작을 앞세운다. 갤러리조은은 흙으로 물방울을 빚어 순간의 영원을 붙드는 조원재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노화랑은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으로 부스를 꾸린다. ‘평범한 작업실’ 소속 정민우·홍영훈·최병철이 나선다.

‘2026 화랑미술제’에 나서는 조원재의 흙작업 ‘우리 안에 어디든 001’(뒤 16×16×27.5㎝, 앞 8×8×11.5㎝, 2026). 갤러리조은 부스에 놓인다(사진=갤러리조은).

시장에 무엇을 꺼내놓는가는 장사꾼의 마음이지만 그이가 오로지 하나에만 올인 했다면 볼거리는 하나 이상이 된다. 장사꾼의 안목까지 내걸리니까 말이다. 아트페어 속의 아트페어라 할 ‘솔로부스’ 섹션은 그런 의미다. 지난해 화랑미술제에서 처음 시도해 눈길·발길 다 잡은 ‘솔로부스’가 올해는 아예 중앙으로 진출했다. 가장 많은 인파가 오고 갈 메인 동선에 밀집시켜 배치하는데. 19개의 화랑·갤러리가 나서 저마다의 작가를 단독으로 내건다.

‘2026 화랑미술제’에 출품하는 채림의 ‘대지’(80×80㎝, 2025). 학고재갤러리의 작가 솔로부스에 걸린다(사진=학고재갤러리).

가나아트는 동화적이고 천진한 익살 뒤에 비감 어린 세상을 비쳐내는 문형태의 회화작품으로만 부스를 채운다. PKM갤러리는 무디고 무심하게 사람을 빚어온 정현의 브론즈 조각작품, 학고재갤러리는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옻칠로 되돌리는 채림의 회화작품을 쌓아낸다. 박여숙화랑은 패트릭 휴즈, 아트사이드갤러리는 권소진의 작업을 꺼낸다. 결과물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의도하지 않은 착시효과를 만들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 ‘작품과 작품이 아닌 세상’에 대해 묻고 답해 왔다.

‘2026 화랑미술제’에 출품하는 정현의 브론즈작업 ‘무제’(45×22×17㎝, Ed.36, 1998). PKM갤러리의 작가 솔로부스에 놓인다(사진=PKM갤러리).

‘젊은’ ‘신진’… 화랑미술제 새로운 정체성

물론 화랑·갤러리마다 편차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화랑미술제의 색은 점점 더 ‘젊은 작가’로 짙어지는 듯하다. 더 이상 ‘신진작가’를 입 밖으로 꺼내 강조하지 않아도 말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화랑협회는 “신진작가에게는 미술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 신규 컬렉터에게는 좀 더 쉬운 작품으로 미술시장에 입문하는 기회”가 될 거란 기대감을 일부러 내비치기도 했더랬다. 그렇다고 시장을 선도하는 대형작가들의 역할이 빠질 순 없겠지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갤러리가 저마다 내건 신진작가들의 비중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고 있단 얘기다.

‘2025 화랑미술제’ 전경.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줌인 특별전’에 선정된 신진작가 10명의 작품을 전시한 섹션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덕분에 7회차를 맞는 화랑미술제의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줌인 특별전’이 덩달아 주목을 받는다. 작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등용문인 ‘줌인 특별전’에 들기 위해 올해는 700여 명이 지원했다는 후문이다. 그중 10명의 작가(김수연, 박시월, 송다슬, 윤인선, 이수지, 이신아, 이진이, 정미정, 정진, 하성욱)를 이미 선발했고 이들의 작품은 한데 모여 걸린다. 아트페어가 열리는 전시기간 중 관람객들의 현장 투표를 받고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친 3명에게는 마지막 날 시상도 한다.

화랑미술제가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으로 세우는 ‘줌인 특별전’에 나서는 정미정의 ‘보이는 것’(116.7×80.3㎝, 2025). 올해 ‘줌인 특별전’은 700여 명의 공모를 받아 선별한 10명의 작가가 내놓은 작품으로 꾸린다(사진=한국화랑협회).

“한국미술 생태계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이라며 화랑미술제의 의의를 다진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50주년 한국화랑협회의 지향까지 아울렀다. “신진작가 발굴과 미술시장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는 데 올해 행사의 의미가 특히 더하다”고 했다. 그 바탕이 된 지난한 반세기의 현장을 사진·도록·스크랩 등 아카이브 자료로 생생하게 내보이는 자리도 마련한다. 올해 화랑미술제에서만 볼 수 있을 ‘특별한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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