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고착시 연간 수천억 추가 비용 부담 현실화
전쟁 장기화 땐 수요 둔화 및 물류 차질 '이중 압박' 확대
HEV·BEV 믹스 개선에도 미국 등 시장 수요 감소 부담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의 ‘이중 봉쇄’가 현실화되며 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현대자동차·기아의 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유가 급등과 물류 차질, 수요 위축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완성차 실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대차 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14일 업계에 따르면 이란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되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고착되면 현대차·기아에 최소 4000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아는 최근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고착되면 연간 1500억~2000억원 규모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정확한 추산액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기아보다 해외 수출량이 많아 추가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지난해 현대차의 해외 수출량은 342만5226대로 기아의 수출량 258만4238만대보다 약 84만대 가량 더 많다. 현대차는 중동 항로 불안에 대응해 기존 호르무즈 해협 경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물류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해상 운송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지만, 운송 기간 증가와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요 측면에서도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다. 기아는 전쟁이 3개월 내 종료될 경우 약 4만대 판매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이미 둔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소비 위축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최대 시장인 미국은 유가 변화에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여전히 내연기관차 중심의 소비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유가 상승은 차량 유지비 부담 증가로 직결되며 수요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가고 있단 점이다.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맞서 역(逆)봉쇄를 예고한 직후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급등해 각각 장중 100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올 11월 미국 중간 선거 때까지도 유가가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는 12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을까지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하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고, 동일할 수도 있으며, 아마도 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전쟁에 의한 단기 충격은 물량 재배치와 환율 효과로 대응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원가 상승과 수요 둔화가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 압박’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상수 iM증권 연구원은 “현재 이란 사태와 관련한 영향이 확대되는 기점은 3개월”이라면서 “만약 이란 사태가 3개월이 넘어가면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창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전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예측 불가능한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기아는 친환경차 중심의 판매 믹스 개선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HEV)와 전기차(BEV) 판매 비중을 늘려 성을 방어하고, 원·달러 환율 상승 효과가 수출 채산성을 높이며 원가 부담 일부를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