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착취 감추는 도구로 활용
이해관계 기반 제도 설계 필요
◇다정함의 배신/조너선 R. 굿먼 지음·박지혜 옮김/308쪽·2만 원·다산초당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전 세계 197개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는 ‘파리 협정’에 서명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2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약 375억 t을 기록하며 역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파리 협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심각하게 미흡한 수준’이었다. 서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가 처음부터 흔들렸던 셈이다.
현대 사회는 ‘협력’과 ‘연대’를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책임 전가’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왜 이런 괴리가 발생할까. 집단 행동 등을 연구해온 사회과학자인 저자는 “모든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순진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오늘날의 다정함은 기만과 착취를 감추는 도구가 되고, 연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다정함이란 생존을 위해 진화한 인류의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심리 실험과 학문 사례를 소개한다. 일례로 수렵 채집 사회의 여러 부족을 관찰한 결과 ‘나눔’은 도덕적 문화가 아니라 필수적인 시스템이었다. 사냥 성공률이 낮은 환경에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최적의 합리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나눔조차 완전히 평등하지는 않았다. 상대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자원의 배분량은 달랐다.
이처럼 인간은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이다. 이 본능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것이 ‘위선’이며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반복된다.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강조하면서도,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인간은 타인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베푸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저자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착취 행위를 고발하고 타인을 착취할 경우 실질적인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다정함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기반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 이런 주장이 일견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만큼 가짜 다정함이 만연한 세상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