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리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치매라고 하면 대부분 기억력 저하나 건망증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일부 치매는 기억력 저하가 아니라 시야 흐림, 말 어눌함, 잦은 낙상으로 시작된다.
가장 흔한 치매의 형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의 약 60%를 차지한다. 기억력 저하가 대표적 증상이다.
나머지 약 40%는 비교적 덜 알려진 다양한 형태의 치매다. 이 가운데 일부는 비교적 알려져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잘 알려진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처음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불안·우울증으로 고통받다 생을 마감한 후에야 루이소체 치매(인지 기능 변화 + 환각 + 파킨슨 증상 함께 발현)로 확인됐다.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앓았던 파킨슨병은 진행 과정에서 치매(운동 질환+치매)가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영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앓고 있는 전두측두엽 치매는 기억력보다 성격 변화와 언어 장애가 먼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는 인지 저하, 실어증 증세를 겪다 은퇴 후 전두측두엽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희귀 치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영국 리버풀대학교 인구건강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클라리사 기벨(Dr. Clarissa Giebel) 박사는 비영리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기고를 통해 “치매는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질환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 치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벨 박사는 희귀 치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초기 신호를 더 빨리 알아차리고, 환자에게 맞는 도움을 제때 제공할 수 있다며 주목해야 할 네 가지 유형을 소개했다.
1. 후부피질위축증(PCA)
이 질환은 기억보다 시각과 공간 인지 기능에 먼저 문제가 생긴다. 글을 읽을 때 글자가 겹치거나 뒤엉켜 보이고, 계단에서 깊이 가늠이 안 돼 다음 발을 디딜 위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식이다. 심한 경우 시각적 환각도 나타날 수 있다.
보통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 사이에 시작되며,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뇌 변화가 관찰되지만 증상 양상은 다르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약 5~15%에서 이런 형태가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2.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한 치매로, 몇 달 만에 급격히 악화되는 특징이 있다.
이 질환은 프리온 단백질 이상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프리온의 기능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신경과 뇌세포를 보호하고 신체의 생체 리듬을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프리온 단백질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이유로 갑자기 잘못 접혀 비정상 상태가 되면, 다른 치매보다 훨씬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근육 경련, 운동 이상 등이 동반되며, 알츠하이머병이나 루이소체치매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고령과 유전이 주요 위험 요인이며, 매우 드물게 오염된 소고기(광우병) 노출과 관련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브루스 윌리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3.전두측엽 치매-운동 신경원 질환(FTD-MND)
전두측두엽 치매는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서 뇌 조직이 점진적으로 소실되는 질환의 하위 유형을 지칭한다.
반면, 운동 신경 질환은 호흡 곤란, 운동 장애와 마비를 유발할 수 있는 급속히 진행되는 신경 질환이다. 뇌와 신경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는 치매의 한 유형은 아니다.
FTD-MND는 전두측두엽 치매와 운동신경질환이 함께 나타나는 형태다.
이 경우 환자는 기억력 문제보다 근육 위축, 경직, 삼킴 장애 같은 증상을 먼저 겪을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치매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진단이 늦어지는 원인이 된다.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의 약 10~15%에서 나타나며, 특정 유전자 변이와 관련이 있어 가족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4. 진행성 핵상 마비(PSP)
PSP는 치매와 운동 장애를 유발하는 희귀 신경질환이다.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질환과 증상이 유사하여 초기 진단이 어렵다.
대표적인 특징은 시선 조절과 균형 유지의 어려움이다.
눈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워지고, 균형을 잃어 넘어지는 일이 잦아진다. 동시에 집중력 저하와 문제 해결 능력 저하도 나타난다.
치매,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
현재까지 모든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부 약물이 알츠하이머병에서 증상 진행을 늦출 수 있지만, 다른 유형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다른 치매 유형을 가능한 한 빨리 발견해 맞춤형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벨 박사는 “누군가가 기억력보다 보행, 시야, 언어에서 먼저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에 맞는 돌봄이 필요하다”며 “치매를 기억력 문제로만 이해하면 중요한 신호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치매의 초기 신호는 행동 변화, 시야 문제, 잦은 낙상, 보행 이상, 말하기 어려움 등 다양하다. 이러한 변화 역시 치매의 시작일 수 있다.
즉,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질환’이 아니라 시각·운동·언어·행동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 질환이다.
희귀 치매는 드물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증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진단이 늦어지고, 그만큼 환자와 가족이 겪는 부담도 커진다. 반대로 질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더 빠른 대응과 더 적절한 돌봄이 가능해진다.
일반적인 치매 증세와 다르지만 몸이 보내는 초기 신호를 빨리 알아차린다면,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