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1.43도 상승
지구에 쌓인 열도 관측 이래 최고… “올해-내년 가장 더운 해 가능성”
작년 여름 한반도 평균 기온 25.7도… 극한호우-가뭄에 대관령도 첫 폭염
“한반도 기후 재난 직면… 심해질 듯”
지난해 전 세계 곳곳이 이례적인 고온 현상에 시달린 가운데 지구에 쌓인 열이 1960년 관측 이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1년은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11개의 해로 기록됐다. ‘올해가 앞으로 겪을 여름 중 가장 선선한 여름’이라는 말이 현실이 된 셈이다.
기후 위기의 여파는 한반도를 비켜가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은 국내 기상 관측이 체계화된 1973년 이래 가장 더웠다. 또 역대 최대 피해를 낳은 대형 산불과 108년 만의 극심한 가뭄이 함께 나타났다.
올해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써부터 기상이변이 나타나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모든 기후 지표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최근 11년은 모두 역대 가장 더운 해”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2025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공개했다. WMO는 1993년부터 매년 각국의 기상기관과 전문가 네트워크 자료를 기반으로 세계 온실가스, 기온 등 주요 기후 지표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는다. 올해는 지구 에너지 불균형을 처음으로 주요 지표로 포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1.43도 상승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에서 제시한 기온 상승 한계선인 1.5도를 눈앞에 뒀다. 그만큼 기온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는 뜻이다.
또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하면서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도 1960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구 시스템에는 태양 에너지가 유입되고 적절한 양이 다시 방출돼야 하는데, 온실가스로 인해 빠져나가는 에너지가 급격히 줄면서 지구에 열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과잉 에너지의 1%는 대기 온난화로 이어지고 5%는 대륙에 저장된다. 3%는 빙하 등 얼음을 녹이고 데우는 데 쓰인다. 나머지 91%가 바다에 흡수되는데, 바닷물이 품고 있는 열에너지의 양인 ‘해양 열용량’은 지난해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최근 20년간(2005∼2025년) 해양 온난화 속도는 1960∼2005년에 비해 2배 이상 빨랐다.
이처럼 바다가 따뜻해지면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의 폭풍이 증가하고 극지방에서는 해빙이 빠르게 녹는다. 이산화탄소가 해양에 흡수돼 발생하는 ‘해양 산성화’도 심해져 조개류 양식 등 어업을 통한 식량 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에 따르면 최근 해양 표층 산성도(pH)는 지난 2만6000년 중 가장 낮았다.
보고서는 “지구 기후는 관측 역사상 가장 불균형한 상태에 있고, 온실가스 농도 증가로 인해 대기와 해양의 온난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 3월인데 미국은 벌써 44도
올해도 벌써부터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기상 관측 기관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월은 역대 가장 더운 1월로 기록됐다.
지난달 20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와 애리조나 국경 지대 기온이 44.4도까지 올라 3월 기준으로 미국 최고 기록을 세웠다. 미 기상청은 이 지역들의 사막에 폭염경보를, 나머지 지역에는 산불 주의보를 발령했다.
기상학자들은 올여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엘니뇨(적도 부근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현상)가 겹칠 경우 올해와 내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 해양대기청 산하 기후예측센터는 지난달 “8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80%”라는 분석을 내놨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평년보다 따뜻해진 태평양 중부와 동부의 해수가 기상 패턴을 변화시켜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가뭄, 홍수를 불러일으킨다. 산업화 시기에 비해 평균 기온이 1.55도 높아 역대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된 2024년 역시 강한 엘니뇨가 발생했다.
● “한반도도 기후 재난 직면, 피해 더 심해질 것”
WMO는 특히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해 발생한 지구촌의 극한 기후를 다루면서 3월 국내 영남 일대를 덮쳤던 대형 산불과 여름철 폭염을 사례로 제시했다. 지난해는 한국 역시 각종 극한 기후 현상이 집중된 유례 없는 한 해였다.
기상청과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역시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통해 한반도를 덮친 복합 기상 재난의 실태를 조명했다. 지난해 3월 21∼26일 경북 의성, 경남 산청 등 영남 일대를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해 역대 최대 규모인 10만5084ha(헥타르)의 산림이 불탔다. 이례적인 고온과 낮은 습도로 인해 축구장 14만7100개보다 넓은 면적이 피해를 본 것이다.
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로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구미(55일), 전주(45일) 등 20개 지역에서 관측 이래 최다 폭염 일수를 기록했고 대관령에서도 사상 첫 폭염이 발생했다.
극한호우와 극한가뭄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경기 가평과 충남 서산 등 15개 지역에는 시간당 최다 강수량이 100mm를 넘는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반면 강원 영동 지역은 지난해 여름 강수량이 평년의 34.2%(232.5mm) 수준에 그치며 108년 만의 가뭄이 발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모든 주요 기후 지표가 위험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며 “이 같은 기록적 현상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는 신호”라고 했다. 이미선 기상청장은 “한반도는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가뭄 등 종합적인 기후 재난에 직면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그 피해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발생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실효성 있는 대응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