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양병찬 옮김
648쪽·4만3000원
문학동네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펜을 집어 들고 묻는다. “제가 방금 이걸 들기로 결정했는데, 그게 제 통제 밖의 일인가요.” 대부분은 이를 ‘개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및 의과대 신경학과 교수인 저자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다. 그 행동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조건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생물학과 신경과학 연구를 토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란 환상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세계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인간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결정론의 편에 선다. 전작 ‘행동’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이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던 그는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는 감각 자체를 지적한다.
인간의 행동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핵심 논지다. 몇 초 전의 신경 신호, 몇 시간 전의 호르몬 변화, 어린 시절의 환경, 태아기의 조건, 더 나아가 진화와 문화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현재의 선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원인이 이어진 흐름 속에선 독립적인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누군가 펜을 드는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이뤄진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움직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신간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의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오랜 시간 축적된 선행 원인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1980년대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의 실험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심하기 약 0.3초 전에 이미 뇌는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결정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제 결정 이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러한 관점을 구체화한다. 1000건이 넘는 사법 판결을 분석한 결과, 판사가 식사한 지 오래됐을수록 가석방 허가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배고픔이라는 신체 상태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스트레스 호르몬의 변화는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을 유도하고, 수면 부족 역시 판단력을 흐린다. 개인의 성장 환경과 교육 경험, 문화적 배경까지 고려하면, 특정 행동은 의지의 결과라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의 누적된 산물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졸업식장의 졸업생과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삶을 맞바꾸는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개인의 성취와 실패가 순수한 선택의 결과라는 믿음을 흔든다. 유전자와 환경, 성장 배경을 바꾼다면 두 사람의 위치도 뒤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 이는 노력과 성취를 개인의 공로로만 돌리는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확장된다.
논의는 범죄와 처벌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범죄를 개인의 도덕적 선택으로만 보는 관점은 설득력을 잃는다. 저자는 ‘응보(應報)’에 따른 처벌 대신 격리와 재활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뇌전증이나 조현병이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치료의 대상이 된 것처럼,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처벌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인간 행동이 다양한 원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과,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전면 부정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좁게 정의한 뒤 이를 부정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펜을 드는 사소한 순간부터 삶의 중요한 선택까지, 우리가 ‘내 결정’이라 믿어온 경험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선택’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제기 자체의 힘이 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