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무역의 중심 ‘호르무즈 해협’… 전쟁으로 봉쇄되자 선박들 발 묶여
바다, 지정학적 요충지로 급부상… 지도로 전 세계 해양 패권 살펴봐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에밀리 오브리, 프랭크 테타르 지음·이수진 옮김/272쪽·3만1000원·사이
신간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는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해 21개 바다를 다양한 지도로 소개하는 책이다. 사진은 글로벌 선박 추적 사이트 ‘머린트래픽’에 10일(현지 시간) 현재 페르시아만에 정박했거나 대기 중인 선박들이 표시된 모습. 머린트래픽 화면 캡처
“인간을 굴복시키는 것들 중 바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변수와 맞물려 세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지금처럼 이 말이 시의적절할 때가 있을까. 세계의 시선이 바다로 향하고 있다.
신간은 프랑스 아르테 방송에서 지정학 프로그램 ‘지도의 이면’을 연출·진행해 온 저널리스트가 수년 동안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해 온 지정학 박사와 공저했다. 프랑스에서 10만 부 이상 판매된 지도책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의 후속작으로, 이번엔 바다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호르무즈 해협, 대만 해협, 지브롤터 해협 등을 직접 답사하고 5대양 113개 바다 가운데 21곳을 선별해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은 지도를 통해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즐거움이다. 가령 호르무즈 해협은 지도만 봐도 전략적 ‘빗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사실상 유일한 출입구이기 때문이다. 해협의 조건도 긴장을 키운다. 수심은 얕고 폭은 약 45km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언제든 봉쇄 위협에 노출돼 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이 지역의 군사화가 가속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2023년 각각 세계 무기 수입의 9.6%, 9.4%를 차지하며 인도에 이어 세계 2·3위 무기 수입국에 올랐다. 각국은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우회로 확보에도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부 석유를 육상 송유관으로 홍해 연안까지 수송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 역시 아부다비 유전과 오만만의 푸자이라 항구를 잇는 송유관 건설에 투자했다.
저자는 바다가 현대 세계의 핵심 무대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에는 흑해가 있고, 중동 분쟁의 긴장선에는 홍해가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해 세계 해상 물류가 흔들린 장면은 바다의 전략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대국의 조건 역시 바다에서 결정된다. 세계 1위 해양 강국인 미국은 동맹국에 배치된 해군기지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배타적경제수역을 바탕으로 바다를 통제하고 있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유럽 해양 강국들에 비해 뒤처진 국가였다. 해양 전략이 국가 위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역시 바다를 향해 체스 말을 옮기고 있다.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서 파키스탄 과다르, 홍해 지부티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 항만에 투자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상업적 목적과 함께 군사적 활용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오늘날 세계 무역의 90%가 해상 운송으로 이뤄지고, 인터넷 데이터의 98%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오간다. 육지에만 눈길이 머물러서는 21세기의 쟁점을 이해할 수 없다. 110개 지도로 세계 해양 패권의 흐름을 읽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