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권 목사는 “세월호 재판에서 단원고 생존 학생은 마지막 진술을 통해 ‘처벌보다 더 원하는 것은 왜 친구들이 그렇게 돼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라며 “아이들이 편하게 안식할 수 있게 우리 사회 모두가 노력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광주=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준석 선장이 진심 어린 참회와 양심선언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죠.”
6일 광주 서정교회에서 만난 장헌권 목사(69)는 무기징역으로 순천교도소에 복역 중인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10년 넘게 찾는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팽목기억공간조성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던 장 목사는 세월호 참사(4월 16일)가 벌어진 2014년 10월부터 지금까지 편지와 면회를 통해 이 선장에게 진상 규명과 진심 어린 사과를 권해 왔다. 장 목사는 “면회 때도 미안하다고는 하지만, 진심으로 들리진 않았다”라며 “유가족을 생각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마음을 바꿨으면 한다”라고 했다.
―벌써 12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 참사가 벌어지고 두 달 뒤부터 광주 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됐어요. 유가족들이 선장과 선원들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고 재판이 끝나고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재판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과 함께하며 ‘잊지 말자’, ‘늘 기억하자’라고 했는데….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사이에 이 선장만 빼고 다른 선원들은 모두 출소했네요.”
―편지를 보내잔 생각은 왜 한 건지요.
“당시 재판 과정을 보면서 피고인들이 뭔가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선장과 선원 등 15명에게 양심고백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지요. 대부분 수취를 거절하거나 답신이 없었는데, 이 선장과 선원 2명에게서 답신이 오더군요. 이 선장에겐 모두 7통의 답신을 받았고, 2024년 4월까지 3번 면회했습니다. 며칠 전(3일)에도 면회를 신청했는데 거절하더군요.”
―이 선장이 잘못은 인정한다고 들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자다가도 일어나 눈물이 나온다’고는 합니다. ‘유가족 얼굴을 볼 낯이 없다’라고도 했지요. 하지만 진심 어린 사과란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진심이라면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모두 밝히고, 유가족 앞에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지요.”
―그는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고, 속옷만 입고 탈출하지 않았습니까?
“법정에서도 그렇고 자기는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말은 해요. 믿을 수는 없지요. 그리고 그 뒤의 행동이 명령을 내린 사람의 행동으로 보긴 어렵지 않습니까.”
장헌권 목사. 광주=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편지를 통해 그날의 진상을 알린 선원도 있더군요.
“답신을 보낸 선원 두 명 중 한 명이 조타수였는데, 그림으로 내부 구조를 그려가며 당시 배 상태를 알려줬습니다. 세월호 2층 화물칸 벽이 철제로 설계됐는데, 무리한 증개축으로 배 무게 중심이 상층부로 옮겨지자 무게 중심을 아래로 분산시키기 위해 철제 칸막이를 떼고 가벼운 천막을 달았다는 거예요. 배가 기울면서 천막 쪽으로 더 많은 물이 유입돼 침몰이 더 빨라졌을 거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조사에서 다 사실로 밝혀졌지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참사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당시 관계 부처가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등이 지금까지도 규명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날의 진실이 모두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이 선장과 선원뿐만 아니라 참사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이 눈물로 참회해도 아픔을 치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겠지요. 10여 년을 고통의 세월을 보냈는데, 얼마나 더 오래 그래야 할지….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