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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성폭력 생존자… 소녀는 투사가 됐다[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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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지음│김나연 옮김│은행나무

학대로 얼룩진 유년기 겪고 가출

모델 에이전시 사칭 성매매 굴레

엡스타인 성범죄 카르텔에 희생

앤드루 왕자 등 상류층 실상 폭로

돈 바라는 거짓말쟁이 모욕 겪어

지난해 사망… 책으로 유지 남겨

제프리 엡스타인을 고발한 버지니아 주프레의 오빠인 스카이 로버츠(왼쪽)가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난 주프레는 자신의 책 ‘노바디스 걸’을 통해 엡스타인의 성폭력을 낱낱이 고발했다.

AP 연합뉴스

일고여덟 살 소녀가 있었다. 한창 행복해야 할 나이에 소녀는 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받기 시작했다. 엄마는 딸이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 사실상 더 끔찍한 가해자였다. 이내 아버지 친구의 성폭행이 이어졌다. 책은 시작부터 고통스러운 장면을 연이어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겠지만 엡스타인 성폭력 생존자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의 ‘노바디스 걸(Nobody’s Girl)’을 한달음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읽는’ 고통에서 되도록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재현하듯 고통의 시간들을 쓴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겪은 일들을 통해 나는 성착취 가해자들이 누군가 막아 세우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 딸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다른 소녀들이 나와 같은 일들을 다시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열세 살 주프레는 고통을 피해 폭력과 약물에 빠졌다. 엄마는 그런 딸을 청소년 재활시설에 감금해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했지만, 또 다른 성착취범 론 에핑거에게 붙잡혀 지옥을 살았다. 그는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한다고 했지만, 기실 성매매를 알선하는 곳이었다. 그는 주프레에게 전형적인 미국 소녀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바비 인형처럼 하얗다시피 밝은 금발로 염색”시켰고, 시도 때도 없이 공격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 주프레는 또 누군가에게 팔렸고,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2년여간 세상의 모든 지옥을 경험한 열여섯 살 주프레에게 집이 편할 리 없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도널드 트럼프가 운영하는 마러라고 클럽 시설관리 직원으로 일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시급 9달러를 받는 라커룸 보조원 자리를 구해 줬다. 주프레는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에 불과했다.

2021년 공개된 앤드루 마운트배튼 윈저 전 영국 왕자(왼쪽)와 버지니아 주프레(가운데)의 사진. AFP 연합뉴스

열일곱 생일을 앞둔 어느 여름날, 출근하는 주프레 옆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길레인 맥스웰이었다. 영국 사교계 인사여서 그런지 마러라고에서 만난 그 누구보다 기품 있었다. 훗날 “그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맥스웰은 주프레가 이제까지 만났던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최상위 포식자”이자 악마였다. 맥스웰은 “함께 여행하며 마사지를 해 줄 치료사”를 구한다며 주프레에게 접근했고 “수학자이자 돈을 버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에게로 그녀를 데려갔다. 제프리 엡스타인이었다. 첫날, 성폭행을 당했다. 엡스타인과 맥스웰은 온갖 아픔을 겪으며 벼랑 끝에 몰린 소녀들에게 “구명줄처럼 보이는 미끼”를 던졌다. 무용수를 꿈꾸는 소녀에게는 춤 수업을, 배우 지망생에게는 배역을 따 주겠다는 둥 거짓말은 끝이 없었다. 성착취는 지면에 쓰기조차 민망한 일들 천지였다. 영국 왕실에서 내쳐진 앤드루 왕자도 가해자 중 하나였다.

탈출에 성공했다. 태국에서 만난 호주 출신 로비의 사랑과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 그렇다고 삶이 순탄치는 않았다. 가해자들의 망령이 수시로 떠올랐고, 그사이 진행된 엡스타인의 의혹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물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탓이었다.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2010년 1월, 두 아들에 이어 얻은 딸 엘리 때문이다. 다른 소녀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게 할 수 없다는 확신은 커졌고, 2011년 2월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투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물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엡스타인이 성폭력 후 돈을 주었다는 이유로 자발적 성매매라는 비난을 받았고, 알량한 합의금 때문에 돈 밝히는 거짓말쟁이, 창녀라는 모욕도 부지기수였다. 살해 협박과 위협도 수시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주프레는 멈추지 않았다. 용기를 낸 “살아남은 자매들”이 하나둘 아동 성범죄자들을 고발했다. 엡스타인은 2019년 7월 수감되었고, 8월 목숨을 끊었다. 하나둘 삶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싶었지만, 주프레는 깊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2025년 4월 삶을 버렸다. 그럼에도 주프레는 끝내 이 책이 세상에 꼭 출간되기를 바랐다. 자신이 겪은 지옥을 그 누구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내용을 더 요약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고통스러울지라도 ‘노바디스 걸’을 읽는 독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 아픔을 공유하며 연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656쪽, 2만7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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