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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탱크보다 강한 달러… 美, 서명 한 줄로 돈줄 끊는다[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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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에드워드 피시먼 지음│이성민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외환·반도체·AI시장 주도하는 美

금융·수출 제재로 적국 무릎 꿇려

경제 연결망이 ‘초크포인트’ 부상

오바마때 재무·국방부서 일한 저자

러외환 동결·中 화웨이 제재 등 분석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전쟁은 일상적이다. 포탄과 미사일로 하는 물리적 전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역 장벽과 금융 제재, 반도체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으로 벌이는 전쟁이 더 심각하다. 2025년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방의 날’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 국가들에 대한 관세율을 평균 20% 이상 올렸다. 이로써 1990년대 이후 ‘세계화 시대’는 완전히 종말을 고했고, 역사는 전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에서 에드워드 피시먼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현대를 ‘경제 전쟁의 시대’로 규정한다. 이 시대는 지난 20년간 미국 대통령들이 점점 경제를 무기 삼아 국익을 달성하려 하면서 막이 올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재무부, 국방부, 국무부에서 일했던 경력을 바탕 삼아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생생한 현장 경험, 국제정치경제 질서에 대한 단단한 이론과 폭넓은 식견으로 오늘날 세계를 뒤흔드는 경제 전쟁의 실상을 펼쳐낸다. 원서의 제목은 초크포인트(choke point)다. 전략적 요충지, 즉 “국제 무역에 무척 중요한 관문이어서 이곳을 지배하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고, 이곳을 봉쇄하면 적을 무릎 꿇릴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주로 지리적 요충지였다.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보스포루스 해협, 지중해와 홍해 사이의 수에즈 운하,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의 믈라카 해협 같은 곳들이다. 현재 미국·이란 전쟁의 호르무즈 해협도 그 하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군대를 보내 희생을 치르기보다 돈의 목줄을 죄어서 적대 국가를 무릎 꿇리려 한다. 이른바 ‘경제의 무기화’다. 이런 게 가능한 것은 냉전 이후, 세계 경제가 점점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의존적으로 변해 왔고, 그 연결망 한복판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나 달러 결제 시스템, 반도체 설계나 장비, 소프트웨어 등 첨단 기술 공급망 등 몇몇 전략적 요충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58%, 국제 결제 통화의 약 40%를 차지하는 달러의 압도적 지배력을 활용해 200개 국가, 1만10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사용하는 SWIFT를 장악하고,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주도함으로써 이 요충지를 틀어쥐고 있다. 어떤 나라든 미국 눈 밖에 나 이 연결망에서 배제되면, 그 나라의 경제는 물가 폭등, 환율 하락, 경쟁력 약화 등으로 파멸적 결과에 처한다. 미국이 이를 깨달은 것은 9·11 테러 이후이다. 테러 자금을 추적하면서 달러 결제망과 SWIFT가 세계 경제의 목줄임을 확연히 인식한 것이다.

경제의 무기화는 미국 안보 정책을 지정학(Geo-politics)에서 지경학(Geo-economics)으로 이동시켰다. 언제든 경제 제재와 수출 통제를 통해 적대 세력을 압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막대한 비용을 써서 함정을 보내고 해병대와 육군을 상륙시켜야 가능했던 요충지 점령의 효과를 대통령 명령 한마디, 재무부 관리의 서명 한 줄로 대체한 것이다.

2006년 이후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사용한 경제 제재는 그 최초의 본격적 사례다. 미국은 이란과 거래를 끊는 데 그치지 않고, 2차 제재를 통해 제3국 기업까지 이란과 거래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로써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50% 이상 급감했고, 경제의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한 이란이 핵 협상에 나서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안보 문제를 경제로 해결하는 데 맛들였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러시아 외환보유액을 동결하고 SWIFT에서 퇴출한 후, 러시아산 원유에 배럴당 60달러라는 가격상한제를 적용했다. 기술도 무기로 삼았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막으려고 화웨이를 제재했고, 더 나아가 네덜란드와 일본의 첨단 노광 설비,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칩 등 반도체 장비의 수출을 통제했다.

경제의 무기화는 미국의 여전한 패권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반발도 거세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탈달러화의 가속을 가져왔다. 중국, 러시아,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고 대안적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파편화와 세계 경제의 블록화, 그로 인한 세계적 물가 상승과 경제 둔화도 심각하고, 미국의 신뢰 상실과 국제적 고립도 치명적이다. 이런 경제 전쟁이 언제 끝날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저자는 경고한다. “지정학적 갈등을 경제 분야로 옮길 능력이 없어진다면, 강대국들은 전장에서 싸우게 될 수도 있다.” 20세기 초처럼 작은 분쟁이 큰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884쪽, 4만3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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