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바흐 ‘요한 수난곡’
예수 처형장의 광분한 대중
스트레토 기법 현실감 높여
신 향한 숭고한 선율이지만
유대인 혐오로 확장 말아야
라이프치히의 바흐 동상.
바흐의 ‘요한 수난곡’은 1724년 초연 이후, 음악사에서 가장 강렬한 수난곡 가운데 하나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재판, 십자가형을 다루는 이 작품은 청중에게 경외심을 선사하는 동시에, 오늘날까지 해소되지 않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반유대주의와 무관한가?”
이 곡은 요한 복음서 서술을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 즉 ‘유대인들(die Juden)’이다. 여기서 유대인은 역사적 지칭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으로 몰아가는 집단적 적대자다. 실제로 요한 복음서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반유대적 정서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요한 수난곡도 이와 유사한 연장선에 있다.
적대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군중 합창(Turba chorus)이다. 집단 히스테리를 연상시키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 “우리에겐 법이 있고, 그는 죽어야 한다”는 대사들은 분노와 적의로 결집된 집단을 형상화한다.
물론 책임의 화살을 바흐에게 돌릴 수는 없다. 핵심은 바흐의 음악적 천재성이다. 바흐는 치밀하고도 효과적인 음악적 장치를 동원해 텍스트에 깃든 군중의 적의를 증폭시켰다. 날카로운 불협화음과 조급하게 몰아치는 당김음은 평정심을 잃고 광분한 대중을 묘사한다. 앞 성부가 끝나기 전에 뒤 성부가 뒤쫓는 스트레토(Stretto) 기법은, 통제 불능의 인파가 서로 재촉하며 고함을 지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이러한 긴장은 20세기 유대인 집단학살을 거치며 더욱 날카로워졌다. 지휘자 루카스 포스는 문제의 ‘유대인들’ 단어를 ‘사람들’로 바꾸어 불렀다. 유대계 작곡가 오스발도 골리호프는 요한 수난곡 대본에 깃든 반유대주의 때문에, 작품에 대해 사랑과 갈등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라. 만약 우리가 유대인이라면, 자신들을 증오 가득한 존재로 부각하는 이 곡을 온전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플랑드르 화가 크빈튼 마시스가 그린 ‘이 사람을 보라’.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군중의 과장된 얼굴과 왜곡된 표정은 유대인을 집단적 적대자로 형상화한 중세·르네상스 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2022년 하버드대 합창단은 캠퍼스 내 유대인 혐오범죄가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해 요한 수난곡 공연을 취소했다. 이전 무대에서 강연과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 복음서 본문에 내재된 문제에 대해 논했지만, ‘세계정세’와 ‘오해 가능성’으로 인해 더는 요한 수난곡을 학내에서 선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질문은 현재로 이어진다. 2023년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2026년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그 분수령이 됐다. 인륜을 저버린 참혹한 만행들이 뉴스피드를 채운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남성의 자백을 받으려 18개월 된 아기를 담뱃불로 고문했다는, 차라리 가짜뉴스이기를 바라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분노가 이스라엘 정부나 군을 넘어 유대인 전체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확장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인류가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은 지 아직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미국 반명예훼손연맹(ADL)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중 반유대적 입장을 가진 비율은 2014년 26%에서 2024년 46%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이는 103개국 5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방대한 조사 결과다. 반유대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요한 수난곡이 던지는 화두는 계속된다. 우리는 ‘타자’를 어떻게 호명하는가. 이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되는가. 바흐는 위대한 작곡가이기에, 역설적으로 그의 음악이 미칠 수 있는 파급력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음악은 인간 정서를 강력하게 움직이고 추동하며 메시지를 뇌리에 깊이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그가 빚어낸 수난곡은 압도적이지만, 텍스트 속 혐오를 무의식으로 전이시킬 위험성도 지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십자가 아래 광분하던 관중의 포효는, 오늘날 우리 곁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가. 그것이 신을 향한 가장 지고한 음악일지라도, 불편한 성찰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