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전의 탄생│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교양인
이슬람 경전의 같은 구절을 붙들고 누군가는 모스크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누군가는 ‘성전(聖戰)’이라며 테러를 일삼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역시 타 종교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경전을 활용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탈종교화 시대 무신론자들은 경전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거짓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렇지만 경전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모든 분열과 혼란의 탓을 경전 그 자체에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경전에 담긴 성스러운 감각과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잃어버린 것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고유한 역사를 쌓아 오며 공동체에 정신적 지침이 돼 온 경전의 가치를 무시하고, 개인의 편협한 굴레에 가둔 결과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을 두루 탐구해 온 저명한 종교학자인 저자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경전의 본질에 주목한다. 본래 경전은 기록된 텍스트라기보다 대부분 구두로 이뤄져 전달돼 온 것이었으며, 의례를 통해 몸으로 익히는 것이었다. 동시에 경전은 신의 계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가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현실, 즉 신화의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경전을 읽어 온 방식을 잊어버리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은 ‘미토스(신화)’를 버리고 ‘로고스(이성)’를 우선순위에 두게 됐다. 그 결과 경전에서 신성을 제거한 채 이를 전부 사실적 기록인 것처럼 읽고 좁은 시각에서 해석하게 됐다. 경전은 성스러움을 간직한 공동체의 지침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견해를 확인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저자는 주요 경전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해 온 것들에도 주목한다. 경전이 계시하는 궁극적인 존재와 진정한 관계를 맺으려면 인간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인이 ‘케노시스’, 즉 자기를 비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게 경전의 오랜 주제였다. 이를 위해 경전들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연민, 동정의 시선을 강조한다. 기독교가 설파해 온 ‘이웃 사랑’ 정신과 불교의 ‘자비’, 이슬람의 ‘자카트(자선)’, 유교의 ‘인(仁)’ 등이 이와 맥을 같이한다. 심지어 낯선 사람을 넘어 적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성경 등에 있다. 경전이 애초에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한 수행 지침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경전의 정신을 삶 속에서 행동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이다. 864쪽, 4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