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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수습돼 합쳐진 ‘경주 월성 돌비석’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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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시간차 두고 각각 출토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 진행

경주 월성에서 83년의 시간차를 두고 수습된 돌비석 조각 두 점이 하나로 이어진 모습(사진)으로 공개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은 13일 경주박물관 신라 천년보고에서 ‘경주 월성 서편 수습 비편’을 특별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1937년 일제강점기에 수습된 비편과 2020년 월성 발굴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출토된 비편이 하나로 맞춰진 모습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앞서 2020년 경주연구소가 계림에서 월성으로 이어지는 진입로 구간 발굴조사에서 찾아낸 비편(가로 16.47㎝, 세로 16.58㎝)의 정밀조사 과정에서 경주박물관이 소장해온 비편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주박물관 소장 비편은 1937년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직원이던 최남주가 서월성지에서 수습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기관이 공동으로 석재 산지를 분석한 결과, 두 비편 모두 경주 남산 일대의 알칼리 화강암으로 제작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3차원 스캔을 통해 형태를 정밀 비교한 결과, 한쪽 면이 정확히 맞물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랜 세월 별개의 유물로 보관돼온 두 조각이 현대 과학기술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학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비편에 사용된 서체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해서체가 아니라 예서체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열린 전문가 포럼에서는 일부 연구자들이 이 서체가 광개토왕릉비의 글씨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해 고구려가 건립한 비석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비편에서 판독되는 ‘백(白)’, ‘천(天)’, ‘공(貢)’, ‘불(不)’, ‘도(渡)’ 등의 글자가 광개토왕릉비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반면 신라사 연구자들은 서체만으로 건립 주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특정 서체를 특정 국가의 전유물로 볼 수 없고, 무엇보다 유물이 신라 왕궁 유적지인 월성에서 출토됐다는 점에서 신라인이 세운 비석일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별 공개는 8월17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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