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자녀
전영수 지음|한경BP|244쪽|1만7000원
“백수 아니고, 전업자녀입니다만.”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 ‘밈(온라인에서 퍼져나가는 유행어)’을 사회경제학자이자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학술적으로 분석한다. ‘전업자녀’란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같이 살지만, 부모 대신 가사를 돌보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 성인 자녀를 뜻한다. 마냥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캥거루족’과는 다르다. 기성세대는 캥거루족과 마찬가지로 이들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저자는 “전업자녀를 ‘가계의 짐’에서 ‘사회의 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전업자녀 수를 최대 800만명으로 어림잡는다. 부모와 동거하는 2040세대의 숫자다. 전업자녀의 출현을 저성장 시대가 낳은 새로운 가족형태의 등장으로 해석한다. ‘인구가 힘’이 아니라 ‘가족이 짐’인 시대가 펼쳐지면서 4인 표준 가족이 붕괴했고, 청년들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전업 자녀를 택한다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 생존 전략은 위험 회피로 굳어진다. 대표적인 현상이 가족 분화의 포기다. 결국 독립 분화의 가족 결성은 고위험·저의 선택 카드로 전락한다.”
저자는 전업 자녀 현상이 반짝 유행이 아니라 향후 10~20년 대세로 안착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X세대 부모 중 딱히 자녀들이 취업·결혼·출산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달라진 자녀의 당돌한 선택으로 전업 자녀를 속단해서는 안 된다. 헝그리 정신은커녕 되바라진 퇴행으로 보는 맹랑한 시선은 더더욱 금물이다. 깨지기보다 뭉치는 게 낫다는 부모·자녀의 연합 전선인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업 자녀 현상이 부모·자식 간 유대가 강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5월 미국 유명 퀴즈 방송 ‘제퍼디(Jeopardy)!’에서 우승해 거액의 상금을 받은 브랜든 리우(27)는 정치학 석사 학위가 있는 고학력자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로스쿨 준비를 하는 취업 준비생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전업 아들(Stay At Home Son)’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동년배들로부터 “내 꿈을 대신 이루고 있다”며 호응을 얻었다. “전업 자녀는 가족 해체보다 가족 진화로 봐야 합리적이다. 악화된 시대가 낳은 결핍과 부재를 새로운 가족 역할로 분담하며 상생 효과를 꾀해서다.”
저자는 “전업 자녀의 은닉이나 배제가 아닌 발굴과 수용을 통해 걸림돌에서 에너지로 전환하자”면서 “전업 자녀는 조로(早老) 사회에 에너지를 확대할 촉진제”라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가계 금융 자산의 약 60%를 움켜쥔 고령 인구가 장수 위험(?)과 제로 금리를 넘어서고자 ‘장롱 예금’을 선택해 돈이 잠기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치매에 걸린 부모가 보유한 동결 자산을 뜻하는 ‘치매 머니’도 사회적 문제다.
저자는 우리도 일본과 같은 미래를 맞이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전업자녀 현상이 부자 부모의 축적 자산을 빈곤 자녀의 활동 자금으로 투입해 늙어버린 돈을 회춘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업자녀의 동기 중 적잖은 비율이 ‘부모 돌봄’에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상호 계약 체제로 부모를 간병하도록 하는 ‘신시대형 가족 복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노인 간병 문제를 가정 내에서 해결하여 사회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다.
그러나 저자도 지적하듯 전업자녀는 하고 싶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 카드가 아니다. 노후 대비가 된 부모를 둔 자녀에 한정된다. 게다가 ‘번듯하고 유의미한’ 현재의 전업자녀가 시간이 지나 늙어버린 후에도 계속 밝고 맑게 존재할지는 미지수다.
저자는 고령 부모(80세)와 중년 자녀(50세)의 조합인 일본의 ‘8050 문제’가 전업자녀의 미래를 예고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령의 병든 부모와 중년의 의존 자녀가 결합한 빈곤, 고립형 동거 조합을 낳을 수 있다. 부모가 사망하고 노후연금이 끊긴 후 남겨진 전업 자녀의 생존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전업 자녀를 ‘문제’ 아닌 ‘징후’로 보고 긍정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제 의식만은 수긍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