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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의 말로 사람 읽기] [5] 총칼 아닌 ‘말’로 잡은 권력... 호메이니의 혁명은 왜 변질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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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검찰의 목을 쳐라” 1979년 이란 매혹시킨 ‘혁명의 말’

집권 후 富 독점한 이권 카르텔, 악마라 칭한 美로 자식들 유학

일러스트=박상훈·ChatGPT

이란은 쉽게 정복당하지 않는 땅이다. 험준한 산세와 좁은 해협이 요새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첨단 군사 기술은 순식간에 심장부를 무너뜨렸다. 뉴스는 실시간으로 최고 지도자의 생사를 쫓느라 분주했지만, 포화 너머로 나는 한 노인의 그림자를 보았다. 하메네이 이전에 이란을 통치했던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1902~1989)다.

흔히 철권(鐵拳) 통치는 총칼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직자였던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기까지 서사는 ‘말의 승리’에 가깝다. 1979년 이란으로 가보자. 시민들은 피 흘린 시위 끝에 2500년 왕조를 몰아냈다.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민심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왕정이 종말을 고했으나, 온갖 세력이 난립했다. 그런데 15년이나 조국 밖을 떠돌던 망명자, 호메이니는 어떻게 이 혼란을 정리한 것일까. 이란인들은 팔레비 왕조에 진저리 난 지 오래였다. 급진적인 서구화는 정체성을 짓밟았고, 상류층이 개방의 과실을 독식했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들 사진이 이제야 회자되지만, 실상은 비밀경찰 ‘사바크’가 일상을 짓눌렀다. 바로 그 틈을 타 파리발(發) 한 남자의 ‘말’이 이란을 매혹시켰다.

“부를 몰수해 나눠주겠다. 왕족의 배를 가르면 국민의 피가 쏟아질 것이다.”

“물과 전기를 무료로 주겠다. 경제적 안락함은 권리다.”

“판사와 검찰의 목을 쳐야 한다. 국왕의 사냥개들이다.”

“독 묻은 언론의 펜을 꺾고 혀를 자르는 것이 혁명의 완성이다.”

훗날 혁명의 선봉에 선 바자르(상인)들을 중심으로 카세트테이프가 돌았다. 집 안 깊숙한 곳에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숨죽인 채 들었다. 테이프 속 메시지는 선명했다. 지직거리는 음질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사이다 같은 일갈은 시민 의식을 깨웠다. 사법기관과 미디어가 왕조와 한통속이었으니, ‘논객’ 호메이니의 꾸짖음이 곧 정의가 되었다.

“권력에는 관심 없다. 승리 후에는 기도하며 살 것이다.”

사심 없는 영적 지도자! 이 선언은 압권이었다. 15년의 긴 망명 생활은 그를 ‘박해받는 고결한 지식인’으로 포장해 주었다. 내부 사정에 어두울 거란 우려조차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성함’으로 승화되었다. 그렇게 ‘총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호메이니는 ‘말’로 내부를 움직였다. 엄청난 환호 속에서 테헤란 공항에 내리던 장면은, 혁명의 화룡점정이었다.

호메이니의 화술은 흥미롭다. 글자로 적은 단어들은 서슬 퍼렇지만, 실제 음성은 매끄러운 어조와 거리가 멀다. 선동하는 고음 대신 낮고 담담하며 투박하다. 주어와 서술어가 뒤섞이는 불완전함조차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의 진심’처럼 들리는 효과를 냈다. 굳이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태도는 신비로운 권위를 주었다. 이는 유창하고 세련된 팔레비 국왕의 엘리트 화법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빛을 발했다. 국민이 고통받는 시기, 정치인의 지나친 유창함이 도리어 가식적으로 들리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모호성’도 득이 됐다. 정치 언어는 시대의 욕망을 투사하는 빈 캔버스 같아야 자기 편을 늘리는 법이다. 호메이니는 헌법 체계 같은 구체성 대신 ‘신의 뜻’이라는 거대 담론을 내세워 여러 목소리를 포섭했다. 막연한 약속 위에 사람들은 각자만의 유토피아를 그렸다. 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빈민층은 무상 복지를 꿈꿨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셜은 이를 가리켜 “광신주의자의 말을 제 입맛대로 오해하는 혁명기의 흔한 실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왕조를 몰아낼 때 힘을 보탠 아나키스트와 좌파 세력 등이 가장 먼저 숙청당했다.

성스러운 명분을 내세웠던 혁명수비대는 어느덧 국가 부(富)를 독점한 이권 카르텔이 되었다. 서구를 ‘대악마’라 저주하면서 정작 제 자식들에겐 악마의 땅 시민권을 쥐어주고 미국·유럽 유학을 보냈다. 특히 금수저들의 ‘말’이 공분을 샀다. 호화 요트 위에서 “능력 없으면 죽으라”며 조롱하거나, 특혜 논란이 일자 “부모 도움 없는 내 실력”이라 강변했다. 47년 전 이란을 매혹시켰던 혁명의 말은, 선민의식이라는 독(毒)에 오염되고 말았다.

물론 지금 이란인들의 심경을 하나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독재자가 죽었다며 축포를 터뜨리기도 하지만, 조국에 떨어진 미사일은 새로운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1979년 카세트 테이프 속 목소리에 희망을 건 이란인들, 그들이 꿈꾼 2026년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자는 ‘말’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으며, 그 말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테헤란에 떨어진 포화가 던진 질문이 묵직하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지난 1월 이맘 루홀라 호메이니 묘소를 참배했다며 공개한 사진. /X(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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