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모순 시원하게 꼬집는
강력한 여성 캐릭터 전성시대
“오현득 부장!!!” 최근 완결된 디즈니+ 드라마 ‘블러디 플라워’에서 평검사 ‘차이연’(배우 금새록)이 법망을 회피하려는 부장검사 이름을 외친다. 부정한 권력을 색출하는 이 장면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검사님이 여자라 예민한 것 같다”는 국회의원 보좌관에게는 불꽃 튀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한다. “여기서 남자, 여자가 왜 나와, 미쳤나 봐. 쯧!” ‘블러디 플라워’는 불치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연쇄 살인범을 둘러싼 딜레마를 다뤘지만, 이와 별개로 권위주의적인 사회에 날리는 평검사 차이연의 ‘사이다’ 대사들이 공감을 받고 있다.
강한 여성 캐릭터 전성시대./디즈니+·KT스튜디오지니·넷플릭스
드라마 속 강력해진 여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 이목을 끈다. ENA 드라마 중 역대 최고 첫 방송 시청률을 기록한 ‘아너 : 그녀들의 법정’(지니 TV·쿠팡플레이)과 넷플릭스 글로벌 1위(비영어 쇼 부문)에 오른 화제작 ‘레이디 두아’까지 세상 부조리에 일침을 가하는 드라마 속 ‘센’ 여자 캐릭터들 목소리에 시청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조 현상이 있었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사적 복수를 하는 ‘더 글로리’(2022), 절차가 복잡한 법보다 현실적 응징을 가하는 ‘지옥에서 온 판사’(2024) 같은 드라마의 ‘강력한’ 주인공들도 모두 여성이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한국 드라마 속 여성 서사의 외연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확장되는 것 같다”며 “여성 서사가 가정 내 억압받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사회 전 분야로 확장됐다. 직장, 사회, 사법 등 공적 영역을 배경으로 드라마 속 여성의 주체성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너 : 그녀들의 법정'의 세 주인공./KT스튜디오지니
스웨덴 원작 드라마를 바탕으로 만든 ‘아너 : 그녀들의 법정’은 여성 변호사들의 이야기다. 배우 이나영·정은채·이청아가 연기하는 세 변호사가 성폭력 피해자를 전문으로 변호해 주는 로펌을 이끈다. 그런데 이들은 동료 중 한 명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고, 동시에 성폭력범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로서의 경험도 공유한 사이다. 드라마는 미스터리물이라는 외피 속에 사회의 편견과 제도를 고발한다. 가장 흔들림 없는 캐릭터 ‘강신재’(정은채)가 유명인인 성폭력 가해자에게 던지는 “그 자식은 개자식이니까요” 같은 대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현대 사회의 배금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 전례 없는 여성 캐릭터도 인기를 끌고 있다. ‘레이디 두아’의 주인공 사라킴(신혜선)은 명품 브랜드를 날조해 만들고 그 브랜드의 지사장 자리에 앉은 희대의 사기꾼이다. 무명에서 시작해 스스로 ‘명품’이 된 입지전적인 이 여성의 대사들이 역설적으로 사회 모순을 꼬집는다. 사라킴은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왜 사기 행각을 벌였는지 이야기하며 자신이 겪어야 했던 삶의 굴곡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반문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습니다. 왜 하필 제가 어둠입니까?”
'레이디 두아'의 사라킴./넷플릭스
이른바 ‘신데렐라 스토리’가 사라진 것도 이들 드라마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차이연’과 ‘강신재’는 명석한 두뇌에 부유한 집안 배경까지 갖춘 정의파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옳은 신념을 좇는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요소가 사라진 것이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요소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남성 주인공들로부터 독립적이면서 강한 신념과 사회적 능력을 가진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들이 해외 시청자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센캐’(센 캐릭터) 여주인공들이 계속 등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