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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제 폐지” 주장한 日 노벨 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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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23년 3월 3일 88세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는 1994년 노벨 문학상에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오에의 1962년작 소설 ‘절규’는 생활과 신화를 응축시킨 상상의 세계로 오늘날 인간의 당혹스러운 곤경을 시적으로 표현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일본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 수상 이후 세 번째였다.

오에는 “일본에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훌륭한 문학가가 많다”고 한 뒤 “내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일본 현대 문학이 그동안 쌓아온 업적 때문”(1994년 10월 14일자 2면)이라고 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 1994년 10월 14일자 15면.

노벨상 수장자 선정 직후 일본 정부가 주는 훈장은 거부했다. 오에는 “나는 전후 민주주의자로 그러한 사람에게는 문화훈장이 어울리지 않는다. 문화훈장은 국가와 결부된 장이기 때문”이라면서 “노벨 문학상에 관해서는 “스웨덴 시민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한다”(1994년 10월 16일자 7면)고 덧붙였다.

오에의 ‘전후 민주주의자’ 성향은 노벨상 수상 22년 전 37세 때인 1972년 선우휘 조선일보 주필과 대담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신의 원칙은? 작가로서의 인생관은? 그리고 행동의 기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오에는 ‘전후 민주주의’를 언급하고 ‘천황제 폐지’까지 과감하게 답했다.

오에 겐자부로-선우휘 대담. 1972년 3월 30일자 3면.

“인간적인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기계화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원칙이나 이데올로기는 갖고 있지 않아요. 딱 하나의 원칙을 세워놓고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게 살아가려고 기를 쓰는 이데올로기 작가와는 다릅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냐, 부단히 그런 반성을 하지요. 패전을 출발점으로 전후 민주주의를 소중히 생각하자는 겁니다만 굳이 원칙이라면 패전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①천황제 근대화는 잘못이었다. ②아시아 속의 일본이란 시점이 모자랐다. ③원폭 전쟁 시대에 들어섰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지요. 당장은 피폭 2세를 위한 운동을 하고 있읍니다만 이건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책임을 민중 쪽에서 지겠다는 생각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오끼나와의 완전 복귀문제가 있어요. 오끼나와가 아시아 침략의 기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죠. 이런 운동(運動)은 실패(失敗)한 셈인데….

천황제는 절대 폐지되어야 한다고 봐요. ‘세븐틴’이란 우익 소년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더니 우익 학생들의 협박이 여간이 아니어요. 그래 늘 이런 꼴로 다니지요 (하며 아무렇게나 입은 녹색 잠바를 가리킨다.) (웃음).”(1972년 3월 30일 자 3면)

서한 주고받은 오에 겐자부로와 귄터 그라스. 1995년 7월 15일자 9면.

2차 대전 패전 50주년인 1995년엔 역시 패전국인 독일의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와 과거를 반성하며 주고받은 편지가 공개됐다.

“올해로 2차 대전 패전 50주년을 맞는 일본과 독일. 이들 두 나라의 양심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귄터 그라스가 자기 나라를 비판하는 공개 편지를 서로 주고받아 주목을 끌고 있다. ‘양철북’ 작가이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그라스는 “과거 범죄를 역사에 묻지말고 끊임없이 거론하자”고 편지에 썼고,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애매하다”고 말했던 오에는 “개인의 행복을 개인이 주도할 수 있는 세상이 아쉽다”고 답장했다.”(1995년 7월 15일 자 9면)

2005년 5월 24일자 A4면.

오에는 여러 차례 방한해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반성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전후 민주주의자’ 입장에서 비판하고 평화 헌법 수호를 천명했다.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100년을 맞은 2010년 “한국 병합은 당초부터 원천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214명 공동 성명에 참여했다.

극진한 자식 사랑으로도 잘 알려졌다. 아들 오에 히카리는 정신지체 장애를 딛고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59)의 장남이 정신 지체의 장애를 이기고 작곡가로 홀로서기에 성공해 화제다. 인간 승리의 주인공은 오에 히카리(31). 출생 직후 뇌수술을 받아 말 못하는 정신 박약아로 자란 그는 최근 ‘히카리-어게인’이라는 자작곡 CD를 일본 데논 레이블로 출반,발매 두 달 만에 동경에서만 5만장이 팔려 나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1994년 12월 9일 자 39면)

1994년 12월 9일자 39면.

오에가 장애 아들을 키우며 겪은 고통과 극복 과정에 대해 쓴 에세이도 국내 출간됐다.

“장애자 아들 탄생 때 의사의 권유에 따라 죽도록 방치할 것인가,수술해서 재생시킬 것인가라는 인간적 고통에서부터 성장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 등이 가족들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다. 언어 표현 능력이 부족하고 지능 발달도 정상아에 비해 훨씬 늦지만 유달리 음악에 관심을 가진 아들의 재능을 발견,음악가로 키우는 모습이 감동 깊게 펼쳐진다.”(1995년 8월 4일 자 20면)

2000년 3월 25일자 42면.

오에 겐자부로 소설은 23세 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사육’(1958)부터 78세 때 출간한 ‘만년양식집’(2013)까지 다수 번역 출간됐다. 마지막 소설인 ‘만년양식집’의 마지막 구절은 짧은 시구로 끝난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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