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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지켜낸 힘은 자기 변신… 어려워도 계속 그 길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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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창간 106주년]

윤석민 서울대 교수 기고

1년 전 1200장 넘는 분량의 언론 관련 서적(‘저널리즘 연구 1·2′)을 내면서 그 첫 장을 ‘언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 답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언론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세상사를 알리는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사회적 소통이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일반 대중이다. 언론이 수행하는 소통은 학자나 전문가 집단이 내놓는 학술 논문이나 연구 보고서 등과는 애초에 목표를 달리하는 대중적 소통이 본질이다. 속칭 B급 소통이다. 하지만 이 소통의 의미는 역사적이었다. 이는 소수의 ‘권력 엘리트’를 넘어 ‘우리’가 중심이 된 정치 체제, 즉 민주주의와 동전의 앞뒤처럼 결합되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곧 언론이었다.

이러한 소통을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엘리트 집단 내부의 폐쇄적 소통은 좁은 범주의 정보를 정확하고 엄밀하게 구성하는 것 외에는 신경 쓸 게 없다. 촌각을 다툴 필요도 없다. 반면에 일반 대중은 얼마나 넓은 범주의 사람들을 포함하는가. 그 변죽은 또 얼마나 심한가. 게다가 대중은 자신들을 중심에 둔 이 어렵고, 종종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서비스가 그들에게 당연히 제공되는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들은 의식주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 공공요금, 심지어 오락의 대가는 기꺼이 지불하면서 뉴스의 대가는 제대로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리프만이 그의 고전적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우리 문명의 변칙(an anomaly of our civilization)”이라고 명명한 일반 대중과 언론의 이런 무심하고 일방적인 관계는 지난 100년간 달라진 게 없고, 지금도 가치 있는 언론의 존립을 위협하는 딜레마로 남아 있다. 이런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언론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자기 변신을 해왔다.

106년을 맞이한 조선일보의 역사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제 강점과 그것이 자행한 제국주의 전쟁, 6·25, 권위주의 시기, 민주화, 그리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위기와 격변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을 거치며 대중 독자들을 지켜낸 힘은 결국 지속적인 혁신이었다. 조선일보는 흑백TV도 많지 않았던 1970년대에 컬러 인쇄를 도입해 이 세상이 넓고 아름답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인터넷 기술이 처음 도입될 때는 그것을 활용한 실시간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 앞서서 제공했고, 키드넷(KidNet, ‘어린이에게 인터넷을’) 운동 등을 통해 인터넷의 사회적 확산을 이끌었다. 언론사가 취재·제작한 콘텐츠를 지상파 TV, 케이블, 위성, 인터넷, 휴대폰 등에 동시 송출하는 ‘크로스 미디어’ 기획을 통해 미디어 융합을 선도한 것 역시 조선일보였다. 가독성과 미감을 증진시켜온 서체의 혁신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지켜온 혁신적 언론의 길은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사회에는 소셜 네트워크상의 파편화된 정보, 유사 언론의 허위조작 뉴스(속칭 가짜뉴스), AI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이 홍수처럼 범람하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 거침없는 정치권력, 방대한 예산·인력으로 무장된 국가 통치 체제, 국경이 없는 거대 초지능 기업들, 힘을 앞세우며 전쟁을 불사하는 국제 사회 패권주의의 부상은 우리의 삶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돈과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언론 외엔 남은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지금까지 그래 왔듯 뼈를 깎는 혁신으로 그 길을 열어 주기 바란다. 거대한 괴수처럼 커가는 권력과 시장의 장애물들을 지혜롭게 헤쳐 가며, 무심한 대중들이 그 노력의 가치를 몰라줄지라도….

혁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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