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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 70만명 처형한 스탈린… 6·25전쟁 사주해 330만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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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53년 3월 5일 75세

소련 최고 지도자 스탈린. 1943년.

소련 지도자 스탈린(1878~1953)은 한국 현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920~1999년 기사 검색인 ‘조선뉴스 라이브러리 100’에서 스탈린을 입력하면 3643건 기사가 뜬다. 국제 정치 상대였던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2615건), 트루먼(960건)을 더한 숫자와 비슷하다.

1923년 3월 23일 자 기사에 처음 이름이 나온다. 레닌의 병세가 위중해 행정권을 위임했다는 기사다.

“노국(露國·러시아) 인민위원회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로(全露) 중앙집행위원회에셔 ‘레닌’씨의 병세가 위독한 고로 삼월 십사일 막사과(莫斯科·모스크바)에 회의를 개(開)하고 행정권을 ‘카메네후(레프 카메네프)’, ‘루이고후(알렉세이 리코프)’, ‘스타린(이오시프 스탈린)’ 삼씨(三氏)에 위임하기로 결(決)하얏다더라.”(1923년 3월 23일 자 석간 2면)

1923년 3월 23일자 2면.

스탈린은 레닌이 죽은 1924년부터 자신이 사망한 1953년까지 29년간 소련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다.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과 분단,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를 격동하게 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식민지 시기에도 스탈린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김준연은 1926년 2월 12일부터 3월 31일까지 무려 39회에 걸쳐 ‘스탈린의 레닌 급(及) 레닌주의론’을 연재했다. 레닌 사망 직후 스탈린이 모스크바 스베르들로프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레닌주의의 기초에 관하여’를 번역 소개했다. 식민지 지식인 사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알려준다.

1926년 2월 12일자 1면.

“레닌과 그 주의를 알랴면 현금 노농(勞農) 로서아(露西亞)에 잇서서 거의 제일인자의 관(觀)이 잇는 스탈린씨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적당한 줄로 생각하고 지금 그 저서를 역출(譯出)하야 연구자의 참고에 공(供)하려고 한다.”(1926년 2월 12일자 석간 1면)

당대 신문은 스탈린의 정적 숙청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36년 8월 28일 촌평 코너 ‘팔면봉’은 이를 비판적으로 논평했다.

“적색(赤色) 로서아에서는 반(反)간부파라 지목된 지노비에프 등 십육 명에게 사형을 집행(執行). ◇레닌과 나란히 하야 혁명의 수훈자인 거두들을 형일등(刑一等)의 감하(减下)도 업시 엄형(嚴刑)함을 동지(同志) 트로츠키가 분개함도 당연. ◇듯건대 부하린, 카메네프의 제(諸) 거성(巨星)도 반간부운동에 관련이 잇다니 스탈린 정권도 다사다단(多事多端)한 모양. ◇누구의 말가티 정권이란 보수적(保守的) 물건. 한번 잡으면 고집(固執)하랴는 것이 통폐(通弊)니, 이곳에 우의(友誼), 인정(人情), 정의(正義)도 몰각(沒却)되는 법.”(1936년 8월 28일 자 석간 1면)

1937년 6월 8일자 1면.

1937년 6월에는 트로츠키파 숙청을 기사로 자세히 전했다.

“소연방 독재관(獨裁官) 스탈린씨(氏)는 합동본부 사건 이래 트로츠키파(派)의 반혁명 분자 소탕에 열중하여 잇는데 마침내 칠월일일까지에 ‘외국인 간첩 급(及) 반대파의 소탕’을 완료할 방침 하에 최종 또 철저적 청당공작(淸黨工作)에 진출(進出)하엿다고 전한다.”(1937년 6월 8일 자 조간 1면)

1938년 3월 15일자 3면.

스탈린은 권력 독점을 위해 최소 70만명을 처형했다고 알려져 있다. 집권 기간 사형, 강제 이주 및 노동 등으로 탄압받은 이들은 1300만명에 이른다. 1941년 히틀러의 침공으로 비롯된 독소전쟁 과정에서 소련인 2600만명이 사망했다. 북한 김일성에게 전쟁을 승인해 일으킨 6·25전쟁에서 330만명이 사망했다.

스탈린은 6·25전쟁 휴전 협정 중이던 1953년 3월 5일 사망했다. 이튿날 신문 1면에 사망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독재자 스타린 소(蘇) 수상 졸도, 뇌일혈로 실신’이었다.

1953년 3월 6일자 1면.

“그리하여1950년에는 한국전란과 중공의 개입을 사주하고 지난 1월에는 사상에 없는 ‘총원수’의 감투를 썼었으나 드디어 지난 1일 뇌일혈로 졸도, 72세로 비참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차디찬 독신적(獨信的) 독재의 일생에 종점을 찍었다.”(1953년 3월 6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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