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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태양광·원자력은 호르무즈를 통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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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엔 가격 폭등 없고

바람은 교역 차단 불가

원전은 연료 넣고 3년 가동

국경 내에서 생산하는

國産 에너지 늘려가야

지정학적 충격 버틸 수 있어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유조선들 / 로이터 연합뉴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트럼프 비판은 집요하다. 그는 이란 전쟁 발발 후 “트럼프는 재생에너지의 영웅 아닌가?”라고 비꼬았다. 재생에너지 혐오 대통령인 트럼프가 이란 전쟁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풍력, 태양광의 장점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그러면서 “맞다, 원자력도 마찬가지 (장점을 갖는다)”라고 했다.

석유·가스 공급이 위험한 것은 선박을 통해 장거리를 운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조선과 LNG 운반선은 덩치는 크고 공격에 취약하다. 드론, 미사일, 기뢰 같은 값싼 무기로 쉽게 발을 묶어놓을 수 있다. 중동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45일 걸린다. 호르무즈, 말라카, 남중국해 등 질식 급소(choke point)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어느 병목이든 한 군데가 막히면 글로벌 경제가 순식간에 수렁에 빠진다.

석유, 가스로 움직이는 공장과 발전소는 쉴 새 없이 유조선과 운반선이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 안 그러면 악몽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는 공급 변동에 취약하다. 장기 비축이 불가능한 일종의 네트워크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LNG는 영하 160도 이하로 얼린 액체 상태로 수입한다. 기화시키면 증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석유처럼 대량 비축이 어렵다. 한국 비축량이 9일분밖에 안 된다고 한다. 호르무즈 봉쇄 같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엔 치명타가 된다.

햇빛과 바람은 공짜 연료다. 태양광·풍력은 한번 지어 놓으면 20년 이상 추가 비용 없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중동 전쟁은 태양광, 풍력의 전기 단가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미국 환경운동가 빌 매키번은 “태양광은 9300만 마일 우주 공간 거리를 8분 20초 걸려 날아오지만 누구도 태양의 광자를 미사일로 쏘아 떨어뜨릴 수 없다”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햇빛에는 가격 폭등이 없고, 바람에는 교역 차단이라는 것도 없다”고 했다.

원자력 역시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능력을 가진 에너지다. 원자로에 한 번 연료를 장전하면 3년을 간다. 원전 한 기를 1년 움직이는 데 22톤 연료면 충분하다. 같은 전기를 석탄으로 생산하려면 10만 배인 220만톤, LNG는 5만 배 110만톤이 필요하다. 국내 우라늄 공급 회사는 2년 치를 비축하고 있다. 발전 단가 가운데 수입 우라늄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IMF 때도 원전은 비축 우라늄으로 전기를 생산해 고환율 충격에 끄떡없었다. 우라늄은 수입선도 다변화돼 있어 호르무즈 같은 병목이 없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비행기로 들여올 수도 있다. 발전소도 국내 기업이 짓고 운영도 국내 기술자가 하는 국산(國産) 에너지다.

중국은 태양광·풍력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고 원전 건설도 독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작년 상반기 태양광 세계 설치량(380GW)의 3분의 2가 중국 내에 건설됐다. 원전은 작년 7월 기준 58기를 갖고 있는데 32기를 추가로 짓고 있다. 중국이 태양광·풍력, 원자력에 필사적인 이유는 청정에너지라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산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자국 국경 내 에너지는 다른 나라가 봉쇄할 수 없다. 호르무즈 같은 병목 급소를 통과할 필요도 없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재생에너지는 중국이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긴 하다. 폴리실리콘에서 모듈에 이르기까지 태양광의 모든 가치 사슬을 중국이 지배하고 있다. 배터리와 풍력 터빈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를 무기로 쓴 전력도 있다. 태양광·풍력은 간헐성 에너지라는 결정적 약점도 있다. 배터리는 주파수 조절용으로는 쓸 수 있겠지만 전력망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수준의 용량 공급엔 한계가 있다. 간헐성을 극복하려면 결국 백업용으로 가스발전에 의존해야 한다. 천연가스는 지정학적 예측 불가능성이 가장 큰 에너지다.

에너지 선택 기준에 공급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의 세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공급안정성, 즉 에너지 안보가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에너지 공급이 위협받는다면 비용이나 온실가스 걱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국은 고립된 에너지 섬 같은 존재다. 무슨 일이 터져 일주일만 배가 안 들어와도 경제는 충격을 받는다. 석탄발전소 폐쇄가 당위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재생에너지·원자력 패권국 중국이 여전히 석탄발전소를 대대적으로 짓는 이유를 봐야 한다. 석탄발전소를 비상시의 위기 대응 에너지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석탄발전소를 무작정 뜯어내기보다 일부는 가동 태세를 갖춘 채 유지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대만도 폐쇄 석탄발전소의 재가동을 거론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을 최대한 외부 충격으로부터 격리 보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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