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25년 3월 18일 83세
2020년 5월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송재익 캐스터./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스포츠 캐스터 송재익(1942~2025)은 1986년 월드컵 멕시코 대회부터 2006년 독일 대회까지 6회 연속 본선 무대 중계석에 앉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에서 이민성의 결승골이 터지자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던 표현은 스포츠 중계 사상 가장 유명한 멘트로 남아 있다.
‘송재익 어록’은 월드컵 대회 때마다 주목받았다.
2002년 5월 15일자 38면.
“송재익 캐스터가 한국―프랑스 평가전과 월드컵 본선에서 던진, 기발한 ‘멘트’를 모은 ‘송재익 엽기멘트 신버전’도 관심거리. “아프더라도 벌떡 일어나서 한번 째려보는 것도 필요합니다.”(넘어진 한국 선수를 본 후), “이영표 선수가 조르카예프 선수의 옷을 찢어놨어요. 경기 끝나고 서로 유니폼 바꿔 입으면 되겠네요. 네~ 세탁소 가서 재봉질하면 될 것 같아요.”, “안방문을 젖히고 들어갔는데 결국 장롱까지는 가지 못했어요.”(차두리의 골 실패를 두고), “아직 자식이 없어요.”(이을용 선수가 급소에 공을 맞은 것을 보고)”(2002년 6월 14일 자 62면)
““저런 행동은 마치 자갈밭에서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읽는 행동이군요”(골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선수들을 보고), “벼랑 끝에 매달린 일본, 한국이 구명줄이 되어줄 거냐, 아니면 초상집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가는 문상객이 될 거냐”(경기 시작 전 일본이 지면 탈락할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 “마치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밥상 들여가듯 말이죠. 잘 넣어줬네요”(황선홍의 좋은 센터링을 보고) 등도 인기 상위권 ‘멘트’들이다.”(2002년 5월 15일 자 38면)
2020년 6월 6일자 B1면.
송재익은 중계하면서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썼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표현을 즉흥적으로 말한다고 했다.
“제가 쓰는 표현이요? 절대로 미리 준비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전달할 뿐이죠. 다양한 비유가 시청자의 몰입에 도움을 주고 있지 않나요?”(2002년 5월 15일 자 38면)
2020년 인터뷰에선 “재래시장에 가서 세밀하게 관찰하는 편”이라고 비결을 귀띔했다.
“세상 사는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아요. 내가 말쟁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툭 던지려면 가까운 곳에서 소재를 찾아야 해요. 중계도 그렇게 합니다.”
송재익은 이때 인터뷰에서 해설자 신문선과 20년 가까이 호흡을 맞췄지만 “사실 서로 잘 안 맞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축구 중계 90분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캐스터예요. 그런데 욕심 많은 해설자는 자기가 먼저 ‘골이에요~ 골~’ 하고 끼어듭니다. ‘그건 내 영역이니 침범하지 마쇼’ 할 순 없어요. 지적하더라도 PD가 해야지. 신문선씨가 그 나름대로 말을 잘했어요. 대중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잖우.”(2020년 6월 6일 자 B1면)
2025년 3월 19일자 A20면.
1970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복싱으로 스포츠 중계를 시작했다. 1982년 11월 김득구가 사망한 맨시니와의 경기도 중계했다. 김득구의 삶을 다룬 2002년 영화 ‘챔피언’에 캐스터로 출연했다. 송재익은 당시 “김 선수의 영화를 찍게 되니 20년 전 경기 도중 뒤로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가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복싱 중계를 위해 김 선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인생을 취재했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실감 나는 중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2002년 1월 14일 자 23면)고 했다.
2002년 SBS로 옮긴 후 2008년 현장에서 물러났다가 2019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K리그2 중계로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78세 때인 2020년까지 최고령 캐스터로 중계석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