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에 있어서 모두가 거쳐가야 하는 돈과 색, 명예욕에 대한 이치를 설명하는 데는 명리학(命理學)의 표현들이 다른 어떤 서양 철학책보다도 깊이 공감된다. 동경부동식(同耕不同食). ‘같이 협력해서 논밭을 일구고 고생을 했지만 그 결과물은 같이 나누지 못한다’는 뜻이다. 먹을 때는 혼자 독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경부동식’ 팔자를 지닌 사람과는 동업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나서 몇 달 뒤인 1624년에 이괄(李适·1587~1624)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은 어려서부터 책상물림이 아니라 군사적 재능이 있던 무골이었다. 병력을 동원해 인조반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1등 공신이 아니라 2등 공신으로 밀렸다. ‘동경부동식’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돈이 되는 핵심 요직은 책상물림들이 차지하고 칼을 들었던 자신은 변방의 자리인 평안병사로 밀렸다는 소외감이 밀려왔다. 이괄은 약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해 한양 정부를 공격했고, 궁궐을 점령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죽었다. 조선 시대에 반란군에 의해 한양이 점령된 경우는 ‘이괄의 난’ 한 번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제압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서 반란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배로 높다. 요즘 시대에 이괄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김어준은 청와대의 칼날에 쓰러질 것인가? 다른 케이스도 있다. 쑨원(孫文)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경우다. 1911년 신해혁명이 성공해 청나라 황실을 무너뜨렸다. 혁명의 구심점은 쑨원이었다. 쑨원은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가 혁명의 철학으로 내세운 삼민주의(三民主義)는 1980년대 한국의 운동권에까지 영향을 미친 이념이다.
그러나 쑨원은 위안스카이에게 권력을 넘겨줬다. 대단한 양보를 했다. 자신은 군대가 없었으나 위안스카이는 강력한 무력인 북양군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세에는 군권이 핵심인 것이다. 위안스카이는 가방끈은 짧았지만 정답이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려 상황을 돌파하는 추진력이 있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한양에 주둔하고 있던 위안스카이가 상관이던 리훙장(李鴻章)의 허가 없이 독자적으로 군사를 동원해 일본군과 개화파를 제압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위안스카이가 혁명이념을 배반하고 자신이 황제로 올라서려는 퇴행을 보이자 이번에는 쑨원이 위안스카이를 상대로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위안스카이의 정치적 정당성을 박살냈다. 유튜브 상왕으로 불리는 김어준이 쑨원이고, 이재명 대통령은 위안스카이가 되는 것인가. 쑨원이 위안스카이의 정당성을 부정하며 결별했던 것과 비슷하게 김어준이 이 대통령을 상대로 공세를 가하게 될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