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10년 3월 30일 54세
천안함 실종장병 수색작전 순직한 UDT 한주호 준위 .실종자를 찾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한준위는 탐색 및 구조작전 5일째가 된 2010년 3월 30일, 14시 35분 작전해역에 투입돼 실종장병 수색작전을 펼치다가 1500시경 의식불명으로 동료가 긴급 수면위로 부상시켜 곧바로 미 해군 구조함(SALVOR)으로 이송됐다./해군 제공
2010년 3월 30일 오후 7시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 준위 한주호(1956~2010)는 천안함 탐색·구조 작업 중 세상을 떠났다.
“한 준위는 의식을 잃은 뒤 인근 해상에 있던 미 해군 3000t급 구조함 살보(SALVO)함에 옮겨졌으나 2시간여 만에 숨졌다. 해군 관계자는 “한 준위는 이날 오후 2시 35분쯤 천안함 함수(艦首) 부분 탐색 작업에 투입됐으며 오후 3시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의식 불명에 빠졌다”면서 “함께 잠수한 동료가 급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2010년 3월 31일 자 A1면)
2010년 3월 31일 A1면.
천안함은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서해 백령도 남서쪽 약 1㎞ 지점에서 침몰했다. 북한군 어뢰 공격에 따른 폭침이었다. 현장에서 장병 58명을 구조했으나 46명이 사망했다. 준위 한주호는 전역 2년을 앞두고 탐색·구조 작업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사실 빠져도 되는 작전(作戰)이었다. 올해로 군 생활 35년째인 해군 특수전여단(UDT·Under water Demolition Team) 교육훈련대 한주호(53) 준위는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천안함 실종자 탐색·구조 작업에 자원했다. 1975년 특수전여단의 전신(前身)인 해변단(海邊團) 수중파괴대 하사로 임관해 줄곧 특수임무만 맡아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을 누빈 베테랑이다. 2년 뒤 전역을 앞두고 올 9월이면 다음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직업보도반에 들어가 외부 교육을 받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런 탓에 부대의 선·후임 동료들은 “이제 그만 쉬라”고 말렸다. 부대에서도 “가능한 인력은 전원 출동한다”는 방침이었지만 한 준위에게는 별다른 지시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8일 “조국과 해군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는 심정으로 잠수복을 챙겼다.”(2010년 3월 31일자 A2면)
2010년 4월 2일자 A2면.
한주호 준위가 사망하고 사흘 후인 4월 2일 수색작업에 나선 쌍끌이 저인망 어선 98금양호가 침몰해 선원 9명이 사망·실종됐다. 천안함 실종 가족 협의회는 3일 추가 희생에 대해 우려하며 “수색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생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안으로 잠수 요원이 진입할 경우 희생이 우려되기 때문에 더 이상 선체 내부에 대한 진입을 (군에) 요청하지 않기로 했습니다.”(2010년 4월 5일 자 A5면)
한주호 준위의 딸(당시 19세)은 사고 직전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아빠가 보낸 마지막 문자를 간직하고 있었다.
2011년 3월 31일자 A12면.
2014년 12월 27일자 A10면.
“‘슬기, 한의원에 전화 안 했으면 아버지가 하마. 그리고 기숙사 주소 문자(메시지로) 보내거라. 내 딸 싸랑해 만히.’ 지난달 16일 오전 10시 46분, 한 준위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슬기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였다. 아빠는 ‘사랑해’ 대신 ‘싸랑해’, ‘많이’가 아니라 ‘만히’라고 쓸 줄 아는 신세대 군인이었다.”(2010년 4월 2일 자 A2면)
1주기인 2011년 3월 3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루공원에서 ‘고 한주호 준위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2014년 한주호 준위 모교인 서울 개포동 수도전기공고 정문 앞에도 동상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