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78주년 맞아 연구서 낸
박기남 前 제주도자치경찰단장
‘4·3사건과 제주도인민유격대, 1764’를 쓴 박기남 전 제주도자치경찰단장은 “좌익 무장대에 희생된 1764명도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제목에 쓴 숫자 ‘1764’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박기남(59) 전 제주도자치경찰단장이 대답했다. “4·3사건 때 좌익 무장대인 ‘제주도인민유격대’에 살해당한 희생자 숫자입니다.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나온 것이죠. 4·3 전체 희생자의 12.6%입니다.”
제주경찰서 수사과장과 제주 서부·동부경찰서장 등을 지낸 ‘퇴직 제주 경찰’ 박 전 단장은 이번 4·3사건 78주년을 맞아 연구서를 한 권 냈다. ‘4·3사건과 제주도인민유격대, 1764’(오색필)이다. 4·3이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 유린’이라고 일방적으로만 기억되는 것에 반박하기 위해 3년 동안 집필한 저서라고 했다.
박 전 단장의 집안도 4·3사건 당시 좌익에 의해 큰 피해를 겪었다. 1949년 1월 18일 한밤중에 8촌 친척 집에 좌익 폭도들이 들이닥쳐 그 어머니와 누나를 죽창으로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다친 채 겨우 살아났지만 고아가 된 그 친척을 박 전 단장의 조부가 데려다 키웠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친 박순도씨는 “나라가 망한 다음에 내가 살아서 무엇 하겠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해병 4기 학도병에 지원했다. 고향인 애월읍 곽지리에서만 24명이 해병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그들은 좌익 무장대가 저지른 만행을 잘 알고 있었다.
“4·3 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 좌익으로 몰려 희생된 것을 우리가 제대로 헤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남로당 유격대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은 잊혀도 좋단 말입니까?” 장전리 대청단 간부 습격, 죽성·고다시·인다라 마을 습격, 입산 거부자 살해, 명월리·금악리·도두리 습격, 영락리 경찰관 가족 살해, 서흥리 우익 진영 습격, 이도종 목사 생매장 살해, 동료 학생 살상…. 그가 이 책에서 기록한 제주도인민유격대의 만행 역시 끔찍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 편집동 회의실에서 4.3 사건 관련 책낸 박기남 전 제주도 자치경찰단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박 전 단장은 이번 책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두 가지 1차 사료를 싣고 직접 번역한 영문(英文)도 넣었다. 우선 무장 봉기의 주역인 김달삼이 1948년 8월 월북해 해주의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서 읽었던 연설문이다. 총선거를 방해하는 것이 4·3 봉기의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또 하나는 좌익 무장대가 자신들의 활동을 기록한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다.
일각에서 당시 9연대장이었던 박진경 대령을 ‘양민을 희생시켰다’고 음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4·3 보고서는 박 대령의 참모인 임부택 대위가 ‘박 대령이 도민 30명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했다’고 기록했으나, 당시 한성일보 보도를 보면 이것은 임 대위가 아니라 암살범들의 변호사인 김양의 주장이었다는 것이다. 김양은 6·25 때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사건이 ‘5·10 총선과 대한민국의 수립을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무장봉기’였다는 사실 역시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제주도민은 결코 자발적으로 5·10 총선을 보이콧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이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 편집동 회의실에서 4.3 사건 관련 책낸 박기남 전 제주도 자치경찰단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