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영화제 수상한 ‘힌드의…’
가자서 피란 중 피격… 숨진 6세 소녀
“데리러 와 주세요” 통화 육성 그대로
구호단체 적신월사 직원 라나(사자 킬라니)는 공포에 질린 힌드를 달래며 몇 시간 동안 통화를 이어간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찬란
굉음이 이어지는 폭격 속에서 작은 아이들의 소리는 가장 먼저 묻히기 마련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참혹한 영상과 늘어나는 사망자 수에 무감해진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뭉뚱그려진 숫자 너머, 전쟁 한복판에 놓인 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이 작품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겪고 있을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숨진 6세 소녀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힌드의 목소리’가 15일 개봉한다.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영화제 역사상 최장 기록인 23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배우 브래드 피트,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알폰소 쿠아론,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찬란
2024년 1월 29일,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 텔알하와 지역에 대피 명령을 내린 날. 이슬람권 구호단체인 적신월사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피란하던 한 가족의 차량이 총격을 당해 대부분이 숨지고, 여섯 살 아이 힌드가 홀로 차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적신월사 콜센터 직원들은 가족의 시신 사이에 갇힌 힌드와 통화를 이어가며 구조를 시도한다. 영화는 직원들의 시점에서 다섯 시간에 걸친 구조 작전을 따라간다.
특히 논쟁작이 된 건, 실제 콜센터 직원과 힌드가 주고받은 통화 녹음 파일을 그대로 영화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힌드가 “제발 데리러 와 달라” “무섭다”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배우들은 이어폰으로 그 음성을 들으며 연기했다. 중간중간 실제 직원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겹쳐 쓰면서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더욱 흐려진다. 튀니지 출신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베네치아 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힌드의 목소리는 온 세상이 들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은 구조 요청이었다”고 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찬란
영화의 대부분은 콜센터 안에서 전개된다. 구조대와 힌드는 불과 8분 거리에 있었지만, 출동하려면 안전 경로를 확보하고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가까이 있는데도 닿을 수 없는 답답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영화 전체를 짓누른다. 이는 멀리서 전쟁을 바라보는 전 세계인의 무력감과 겹쳐진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찬란
보통의 영화라면 극적인 구조로 끝났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지독하다. 힌드와의 연락은 끊겼고 12일 동안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후 현장에 갔을 때, 차량에선 총탄 355발과 힌드를 포함한 시신 6구가 발견됐다. 유엔은 이 사건을 전쟁 범죄 보고서에 포함시켰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영화는 인도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제작사는 “이 영화가 개봉되면 인도와 이스라엘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직접적이고 고통스러운 재연이 꼭 필요했는지 의문은 남는다. 그럼에도 그동안 전쟁에서 대변되지 못했던 아이의 목소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생전에 바다를 좋아했던 힌드는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모래사장에서 놀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