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
이소연 지음|돌고래|320쪽|2만원
#1. 백화점 1층에서 본 브랜드의 쇼핑백이 한 겹, 박스가 한 겹, 박스 안의 더스트백 한 겹, 양파 껍질 까듯 겹겹이 벗겨낸 가운데에 주인공 알맹이 ‘명품 가방’이 당당하게 자리한다. 주얼리 등 다른 명품도 있다면 들러리처럼 옆에 가격 순서대로 자리한다. 선물 꾸러미 옆에 앉은 여성이 꽃다발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웃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프러포즈 사진이다. 보통 이런 해시태그가 따라붙는다. ‘#프러포즈 #눈물안날줄알았는데 #오빠고마워 #구남친 #현남편.’
#2. 서울 청담동 웨딩드레스숍.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완벽하게 한 여성과, 단정한 세미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들어선다. 드레스 입은 예비 신부가 커튼을 젖히고 나올 때 예비 신랑에겐 ‘그림 그리기’ 임무가 주어진다. 여러 숍을 돌아보고 한 벌을 선택해야 하지만, 드레스 디자인 저작권 보호 때문에 막상 드레스 입은 모습을 사진 찍을 수 없기 때문. 이 때문에 그림 그려줄 미대생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프러포즈와 드레스숍 투어는 지난한 K결혼식 준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축의금 내는 친구들이 마음 상하지 않을 만한 가격 선의 청첩장 모임 식당을 찾느라 고민한다. 결혼식 며칠 전엔 웨딩드레스 핏을 살리려 가녀린 목선과 어깨선을 만들어 준다는 승모근 주사를 맞는다. 막상 결혼식 날엔 팔에 힘이 빠져 드레스 자락 잡을 기력조차 없어진다.
이렇게 공들여 준비한 결혼식이 정작 환경에는 악영향을 끼친다. 결혼식이 끝나면 식장 뒤편으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가득 실은 1톤짜리 트럭들이 줄지어 빠져나간다. “꽃뿐 아니라 1회용 장식물, 풍선, 포토존, 소품, 청첩장 등이 사용 후 대부분 폐기된다. 결혼식 1회당 이산화탄소 배출 추정량이 14.5t이고 한국에서 한 해 평균 치러지는 결혼식은 약 30만건에 달하므로 단순 계산으로 435만t 이상의 탄소가 결혼식으로 인해 배출되는 셈이다. 이는 석탄 화력발전소 한 곳이 1년간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 규모다.”
게티이미지뱅크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과 당근마켓 에디터, ‘사상계’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한 저자는 패션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고 제로 웨이스트 의생활 실천담을 담은 전작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2023)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BBC가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을 선정하는 프로젝트 ‘100 Women’ 인터뷰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책에선 저마다 ‘완벽’을 추구하나 결국은 표백되어 엇비슷한 ‘KS 마크’를 달고 마는 ‘K결혼식’의 민낯을 생생히 파헤친다. 2010년부터 2025년 사이 결혼을 했거나 하려다 말았거나, 할 예정인 신랑·신부 20여 명을 인터뷰했고, 40년 차 웨딩 업계 관계자부터 6개월 차 플래너까지 결혼식을 둘러싼 다양한 업계 관계자 십여 명을 취재했다. 책을 집필하며 마침 결혼식을 올린 저자 자신의 경험까지 녹인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성인이 된 남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준비하는 주요 의례’인 결혼식이 ‘인생에 한 번뿐’ ‘남는 건 사진’이라는 웨딩 업계 마케팅 전략, 소셜미디어를 통해 과시하고 싶은 욕망 등에 휘둘리며 “통과의례에서 통과 ‘소비’ 의례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결혼식 준비는 마치 목적지를 자기 마음대로 설정해 둔 내비게이션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기혼자들이, 혹은 기혼자와 가깝게 지내며 결혼 생태계를 잘 아는 예비 기혼자들이 나타나 나를 설득했다. ‘정말 그렇게 하려고?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여성은 대개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부터 ‘가정의 관리자’ 역할을 떠맡는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결혼식을 준비하며 익힌 방식대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완벽한 삶’을 꾸며나간다. 화이트, 아이보리, 크림색 사이의 벽지를 고민하며 인테리어를 한다. 아이 백일, 첫돌을 위한 옷을 대여하고 스튜디오를 예약한다. 인스타그램에 화장기 없는 청초한 젊은 엄마 사진을 올리고 ‘#완모’라는 해시태그를 단다. 모유 수유로만 아이를 키웠다는 뜻이다. “정답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단계들을 통과하다 보면 정작 그 삶을 살아가는 ‘나’는 희미해져간다.”
촘촘한 취재를 바탕으로 예리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써 내려간 수작이다. 중고거래 앱에서 산 5만원짜리 드레스를 입고, 헬퍼 ‘이모님’ 없이 주택을 개조한 작은 공간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 애쓰다 또 다른 ‘완벽의 늪’에 빠진 ‘나르시시스트 신부’가 되어버린 저자 자신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스드메 견적을 정가로 공개하는 앱, 뷔페보다 단품 메뉴나 코스 요리가 환경 보호 측면이나 하객 편의성 면에서 더 좋다는 팁 등도 알려준다. 이런 구절이 특히 뼈 아프다. “1년에 단 하루, 단 몇 시간을 위해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술과 성형에 돈과 시간을 쓰고, 결정적으로 결혼식을 잘 진행하는 것보다 그것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의식이 되는 상황에서, 결혼식이라는 의례의 본질은 빠르게 퇴색할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기로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