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68년 4월 4일 39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는 유년 시절 친하게 지냈던 백인 친구에게 뜻하지 않은 ‘절교 선언’을 들었다. 백인 친구의 부모가 흑인과 함께 놀지 말라고 했다. 이 사건은 어린 흑인 소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원래 이름은 마이클이었다.
“마이클이 여섯 살 때였다. 검은 소년인 마이클의 백인 친구가 “흑인과 놀면 안 된다”라는 부모의 엄한 타이름 때문에 마이클의 곁을 떠났다. 말없이 침울해진 마이클에게 세례 교회 목사였던 그의 부친은 푸로테스탄트교의 원조인 마틴·루터의 피어린 투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지금부터 네 이름도 그리고 내 이름도 ‘마틴·루터’로 하자”고 격려하였다. 어린 킹 2세에게 신과 흑인을 위해 봉사할 정신적 기틀을 마련해준 것은 그의 아버지 마틴·루터·킹 목사였다.”(1963년 6월 9일자 조간 3면)
1963년 6월 9일자 3면.
킹 주니어는 펜실베니아 크로저 신학교를 거쳐 보스턴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지역 교회 목사로 부임했다. 이해 12월 흑인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이 일어났다.
42세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흑인과 백인 자리를 구분하던 정책에 저항하면서 대규모 항의 운동이 벌어졌다. 몽고메리 지역의 26세 젊은 목사 킹 주니어는 이 사건을 계기로 흑백 차별 철폐 운동을 이끌며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56년 미 연방법원은 버스에서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964년 6월 14일자 4면.
35세 때인 1964년 12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앞서 이해 7월 ‘연방 민권법’ 제정을 이끌었다. 인종·국가·민족·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킹씨에 주어진 평화상은 인류애의 승리’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사설은 킹 목사를 “오직 비폭력 수단과 합리적인 방법으로 전개한 끝에 마침내 흑인의 권익 옹호와 흑백 인종 통합 운동에 개가를 올린 금세기의 젊은 흑인 혁명가”라고 평가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권 사상을 모든 흑인들에게 불어넣는 한편 지난 55년 이래 인종 차별이 격렬해진 미국 남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죽음과 대결하는 불굴의 투쟁과 옥고를 거듭한 것이 보람을 나타내어 결국 흑인의 지위는 향상되었고 또한 그의 꾸준한 노력에 대한 영광있는 보답이 이제 주어진 것이다.”(1964년 10월 18일자 조간 2면)
1964년 10월 15일자 2면.
노벨평화상을 받은 목사이자 비폭력 흑인 인권 운동가는 4년 후인 1968년 4월 4일 가장 인권에 반하는 폭력에 의해 삶을 마감했다.
“미국의 유명한 흑인 민권 지도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64년)인 마틴 루터 킹(39) 박사가 4일 밤(한국시간 5일 오전9시) 멤피스시 중심가에 있는 로르레인 호텔 2층 발코니에서 저격, 피살됐다. 킹 박사는 피습 즉시 성요셉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시간 후 숨을 거두었다. 흉탄은 킹 박사의 목에 1발이 맞았다. 킹 박사는 8일로 예정된 민권 시위운동을 지휘하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1968년 4월 6일자 1면)
1968년 4월 6일자 1면.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지금도 가슴을 우리는 명연설로 남아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30만 군중에게 했던 연설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날엔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 노예와 노예주인 자손들이 형제애의 테이블에 함께 앉는 그런 꿈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날엔가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언덕과 산이 낮아지고 모든 거친 들이 평지가 되고 모든 굽은 곳이 펴지는 그런 꿈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의 내용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1968년 4월 6일자 2면.
이 연설은 미국을 바꾼 것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도 기회를 제공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인종주의 장벽을 흔들어 부쉈고, 한국인들에게도 예상치않던 기회를 던졌다. 1965년, 유색인종 이민을 사실상 금하던 법률이 철폐되고, 공민권법이 제정되면서 아시아계에 대해서도 이민 문호가 열렸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한국인의 이민 물결도 킹 목사의 인권 운동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1999년 7월 15일 22면)
2008년 8월 30일자 A1면.
2008년 8월 28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는 45년 전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한 그날을 골라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 오바마가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후 세계는 킹 목사의 ‘꿈’을 떠올렸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오늘 미국인들은 45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을 현실로 바꿔 놓았다”고 축하했다.